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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Smart Lee 2009. 12. 3. 13:38

 

 

 

 새벽단상


전철이 뱀처럼 굽어 들어온다.
새벽전철 안은 한가롭다.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구석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무엇 때문에 이 시간 여기에서
저토록 곤히 잠들어 있을까.
무던히도 지친 영혼일 게다.
속옷이 보이는 것도 모른 채 잠든 여인도 있다.
그 또한 무척이나 지친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보자기라도 덮어 주고 싶지만...
시험이 있는지 수학문제를 연신 풀어대는 학생 옆에 나는 앉는다.
하지만 졸고 있는 여인의 풀어진 다리가 다시 자리를 옮기게 만든다.

새벽에 읽는 법정스님의 '일기일회'가 깊은 맛을 준다.
지쳐 잠든 저 노인을 봤더라면 법정스님은 뭐라고 했을까.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앓는다."
그 대목에 유독 눈이 오래도록 멈춘다.

- 박병탁 님, '새로움 그리고 떠남' 중에서 -

 

(09-12-03 향기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