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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한국은 어디로?

Smart Lee 2010. 7. 31. 11:47

일본은 왜?  한국은 어디로?

 

저자: 영기, 문병도

  

2009년 8월, 미국에서 발생한 한건의 교통사고는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의 명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거함 일본의 암울한 현실을 전세계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도요타 성공 신화의 상징인 렉서스가 브레이크 오작동으로 인한 폭주로 인해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참극을 일으키면서,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인해 거액의 금전적 손실과 더불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소비자의 신뢰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만 것이다.

사실, 2010년 도요타의 리콜 사태를 보는 외신들의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1등이라는 목표를 한시라도 빨리 달성하는데 급급해, 내적 충실보다는 외적 팽창에 주력하는 사이, 도요타 파워의 근간인 품질 관리와 소비자 우선 정신에 누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도요타 사태를 일개 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1등이라는 오만과 타성에 젖어 개혁과 모험을 회피해 온 일본 경제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1등이라는 목표 달성 이후 새로운 목표 설정에 실패하면서 초심과 방향타를 모두 잃고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에서 비롯된 일본 경제의 추락은 2010년에 달해서는 JAL의 법정관리 문제, 세이부 유락쵸 백화점의 폐점, 급기야는 도요타 리콜 사태로 그 정점에 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경제는 이대로 무너지는 것인가? 일본 경제는 90년대 초 버블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에 이어, ‘잃어버린 30년’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인가? 2010년 벽두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간판 기업들의 추락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로 인한 일시적 업적부진이 아닌, 오랫동안 묵혀두고 감추어 두었던 일본 경제전체의 환부가 드러나고 있는 현상인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의 제1저자인 김영기를 포함한 집필자들은 도요타 사태를 통해 일본 경제의 영욕과 시련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문제점과 잠재력을 대비시키면서 일본 경제의 향방을 가늠한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에게 일본이 추락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 보다는, 일본 경제를 거울삼아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돌아봄으로써,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교훈들을 찾아보기를 제안한다.

대표 저자인 김영기는 경제학자가 아닌 경제신문 경제부 기자다. 1997년 말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가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해 구제금융 협상을 벌인 사실을 특종 보도한 바 있으며, 2005년에는 ‘기로에 선 외환관리’라는 제목의 기획물로 ‘이 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경제 담당 베테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에 얽힌 수많은 ‘보이지 않는 경제적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하는 능력은 여느 경제학자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도요타 사태를 통해 추락의 위기에 직면한 일본 경제의 문제를 진단함과 동시에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경제학자들보다 한발 앞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전반은 일본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모습을 일본의 간판기업 4개사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 4개 기업 모두는 이미 국내 1위, 또는 세계 1위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떨친 기업들이다. 도요타는 2007년 GM을 누르고 생산 대수 기준 세계 1위에 등극했으며 2008년에는 판매 대수에서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바 있다. 소니 또한 브라운관 TV와 워크맨 신화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면서 불과 수 년 전까지 IT 산업의 제왕으로 군림해 왔다. 한편 세계 시장에서는 도요타나 소니에 비해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JAL과 세이부 백화점 또한 일본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지난 수 십년간 거대 내수 시장을 석권한 기업들이다. 그런 굴지의 기업들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우선 도요타는 리콜 사태의 여파로 2년 연속 판매 급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리콜 사태에 따른 금전적 손실과 더불어 품질 왕국의 아성이 무너지며 도요타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매출 손실은 회계연도와 더불어 종결 처리되지만 소비자로부터의 신뢰 상실은 미래의 회계 장부에 영원히 기록되는 치명적인 손실일 수 있다. 향후 도요타가 극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자존심을 회복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시련이 절망으로 바뀌면서 2류 기업으로 전락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니는 도요타처럼 급작스런 사건으로 나락에 빠졌다기보다는 개구리가 서서히 덥혀지는 물 에서 죽어가듯 서서히 라이벌 기업에게 지반을 침식당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소니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 전자업체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니와 비슷한 형국으로 삼성과 LG 등 라이벌 기업에게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도시바, 히타치가 TV와 LCD 시장에서는 소니와 파나소닉이 한국과 중국, 대만의 라이벌 업체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2010년 1월 30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삼성의 순이익이 일본의 15개 전자업체 순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는 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일본 전자산업의 자존심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소니는 워크맨 신화로 이룩한 IT 왕좌를 애플과 삼성에게 넘겨주고 이제는 디지털 기기 전 분야에서 존재감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퇴보하고 말았다. 다행이 소니는 최근의 실적 발표에서 2008년의 1.5조원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2009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재기를 다지고 있지만, 세계 1위의 자리를 재탈환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JAL은 이미 2010년 1월 19일 도쿄 지방법원에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하면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더구나 관련 그룹 3사는 2.3조엔이 넘는 부채를 남기면서 일본 국민과 정부에 엄청난 금전적 부담까지 안기고 말았다. 블룸버그 통신의 윌리엄 패섹이 말한 ‘좀비 기업’의 대표 격으로, 활력을 잃고 국민과 정부의 혈세에 의존해 겨우 숨쉬기 운동만 가능한 노쇠한 공룡으로 전락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교세라 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에게 공룡 JAL의 갱생을 의탁했지만, GDP의 두 배에 가까운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공적자금을 투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 내수 시장의 상징인 세이부 백화점도 2005년부터 실적이 악화되면서 급기야 2009년 크리스마스 특수 기간 중에 문을 닫고 말았다. 1984년 개장 이래 유행과 문화의 총 본산지인 도쿄의 쇼핑거리 긴자에서 여성 고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던 대표 백화점이, 글로벌 경기 불황과 소비트렌드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을 잃은데 따른 결과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함께 지구촌의 양대 축을 형성하며 G2로 군림해왔던 일본은 현재 어떤 모습인가?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에게 세계 2위 GDP 자리를 내어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고, 디플레이션과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활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등 ‘잃어버린 30년’에 돌입할 위기에 직면해있다. 이는 1990년대 불황을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하지 않고 간이처방식 경제정책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는데 급급한 결과이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전후최장의 경제적 호황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는 세계 경제의 활황에 따른 수출 증대의 결과일 뿐, 경제의 펀더멘털은 90년대부터 시작된 하락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한 전세계적 경기 침체기에 일본이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도 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일본의 대표기업들이 나아가 일본 전체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몰락 또는 추락의 길로 접어든 원인은 무엇일까? 각 기업의 매출 구조와 시장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저자는 작금의 총체적 위기는 1등이라는 ‘오만’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초강대국 로마, 무적함대 스페인도 ‘오만’이라는 늪에 빠지면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음을 상기한다면, 오랫동안 1등의 자리에서 위험신호를 무시한 무리한 확장을 지속했던 일본의 대표 기업들이 망하거나 하찮은 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거함 자체도 자신들의 국기에 그려진 태양처럼 영원히 순항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으로 개혁과 혁신을 게을리 하면서 이제는 역풍에 허덕이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명심할 일은 일본을 추락의 궤적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위기의 그림자들을 하루 빨리 인식하고 이에 대처할 것을 강조한다. 즉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일본을 함정에 빠뜨린 바로 그 ‘오만’이라는 것이다. 사실 삼성과 LG 등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기업들을 누르고 정상에 오른 것과, 대한민국이 진정한 극일(극일)을 이룬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일본이 30년 불황의 초입에서 허덕이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의 다섯 배가 넘는 GDP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한국 주력 수출품 또한 일본의 부품 소재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을 만큼 대일 의존도가 큰 상황이다. 아직은 급이 다른 선수 간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측면에서도 일본의 대표 내수 기업들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시장이 축소되면서 존립을 위협받고 있으나, 일본 국내를 넘어 전세계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유니클로와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물론 도요타와 소니도 언제 다시 글로벌 최강자의 자리를 탈환할지 모르므로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단기적인 추월에 만족해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 및 혁신을 게을리 한다면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 전체도 수년 내에 존재감 없는 이류 기업, 이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분단 상황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는 국가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영원한 1등은 없다’라는 섬뜩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되새기게 하며, 향후 닥쳐올 경제사회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해야만, 한국과 한국 기업에게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2010-07-19 삼성경제연구소 정 호성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