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 팽창주의 문제

땅은 쓸모없고 바다는 막혀 중국은 비좁다

Smart Lee 2011. 3. 20. 17:29

땅은 쓸모없고 바다는 막혀 중국은 비좁다

<특별기고 일본-중국 흥망 키, 류큐⑦-좁은 중국의 족쇄, 류큐>
대륙 정책만 고집 외면했던 태평양 이제는 팽창주의 발톱 드러내

 

                                                                                                                           강효백 경희대 교수

요즘 중국은 과거 3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마치 300년 전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시절의 대청제국 같다. 점(點)을 돌려달라는 게 아니라 선(線)과 면(面)을 통째로 삼키고 싶다고 공공연히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대로 중국은 지금 중일 분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센카쿠(첨각(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만 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중국 일각에서는 센카쿠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沖繩, Okinawa)를 포함한 140여개 류큐(瑠球, Ryukyu) 전체가 중국 영토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 가고 있다. 2009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쉬융(徐勇) 베이징대 교수를 비롯한 중국 역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돋웠다.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강압에 의한 1879년의 류큐 병탄, 2차 세계대전 후인 1972년 미국의 오키나와 반환 등은 국제법상 근거가 없으니 센카쿠는 물론, 류큐 군도내 140여개 섬과 해역 전체를 송두리째 중국에 반환해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류큐를 중국 영토라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가 2006년 이후 다시 수십 편의 논문을 비롯한, 언론 학계의 주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중국당국은 묵인을 넘어 조장 내지 권장하고까지 있다는 동향마저 감촉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필자 주>

목차

1. 넓은 일본의 키, 류큐
2. 제1차 일본제국주의의 은신처, 류큐
3. 제2차 일본제국주의의 출항지, 류큐
4. 제3차 불침 항공모함의 출항지, 류큐
5. 이중 종속 왕국, 류큐의 흥망사
6. 30년 터울, 일제의 류큐와 조선의 병탄사
7. 좁은 중국의 족쇄, 류큐
8. 류큐와 미국 대통령들
9. 독도와 다케시마, 센카쿠와 댜오위다오
10. 동북공정과 류큐
11. G2시대 중국, 해양대국화로 몰입하다
12. 중국 차세대 팽창목표는 류큐와 동해?


“단 한 점의 녹색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회색과 암갈색, 암황색 뿐.”

나는 실크로드 기행을 떠나는 중이었다. 중국 간쑤(甘肅)성 중심도시 란저우(蘭州) 공항에서 둔황의 모가오(莫高)석굴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 지방의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여객기는 저속으로, 저공비행하는 습성을 알고 있는 나는 일부러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새가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전체를 한눈으로 관측하는, 즉 조감(鳥瞰)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회색의 사막이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무(無)를 연상시키는 회색이 주는 무료함의 모래사막지대를 건넜다 싶더니 암갈색의 암석사막지대가 전개되었다. 간간이 모래사막과 암석사막사이에 풍화된 암황색의 잔구가 섬처럼 스쳐 지나갔다.

청량음료수를 몇 잔씩 들이켰다. 갈증을 다스릴 수 없었다. 뭔지 모를 그 목마름의 원천은 뭘까. 나는 물줄기나 오아시스, 초원이나 산림지역을 굽어 살피고 싶었던 것이다. 녹색을 향한 갈증이었다. 녹색을 만나면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무려 세 시간의 짧지 않는 비행을 마친 여객기가 둔황공황에 나래를 접을 때까지 단 한 점의 녹색도 볼 수 없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란저우- 둔황 간 약 1500㎞의 비행항로 주변지역에는 초원이나 산림은커녕 단 한 줄기의 내천이나 한 방울의 오아시스도 없는 이른바 ‘무인지대’였다.

우리가 흔히 고유명사로 알고 있는 ‘고비 사막'(Gobi Desert)의 ‘고비'(戈壁 중국어 발음으로 거비)는 중국에서는 사막의 일종인 보통명사로 사용된다. 고비란 원래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의미로서, 모래땅이란 뜻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중국에서 고비는 대부분의 지역이 암석사막을 이루어 모래사막으로 된 지역은 매우 적은 지형을 가리킨다.

국토면적이 넓어 별에별 지형이 많은 중국에서는 사막지역도 크게 넷으로 구분된다. 모래사막의‘사막’, 암석사막의‘고비’, 풍화된 건조한 구릉의‘풍화잔구(風化殘丘)’, 사막화가 진행중인 ‘사막화지역’ 등이다. 이러한 사막지역의 총면적은 2008년 현재 198.24만㎢로 중국 전체면적의 20.6%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면적(남한 면적의 약 20배)이다.

설상가상으로 근래 중국의 사막화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일로에 있다. 1980년대는 매년 제주도 넓이만 한 약 2천㎢의 사막화가 진행되더니 2000년대 들어와서는 충청북도 면적만한 7천여 ㎢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비단 사막뿐만이 아니다. 아래 <중국지형도>를 살펴보라. 시장(西藏 티벳)과 칭하이(靑海)의 대부분, 스촨(四川)과 신장(新疆), 간쑤 일부지역은 보통 사람이 산소통없이는 호흡하기조차 곤란한 해발 3~7천㎞이상의 고산지대(중국 전체 면적의 약 5분의 1)이다.

◇ 중국지형도. 출처: 바이두 http://image.baidu.com


중국은 저 남미대륙의 띠처럼 긴 칠레가 아니다. 동부해안지역의 번화한 도시가 중국대륙의 언뜻 기름지게 보이는 뱃가죽이라면 중서부 내륙의 피폐한 농촌은 아직도 간고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국의 뱃속이다. 내륙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아직 의식주가 아닌 식의주가 통용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고 있는 것은 중국은 땅도 넓고 물자도 풍부하다는 생각이다. 중국은 넓지만 비좁다. 한반도의 44배, 남한영토보다 96배나 넓은 960만㎢의 영토면적, 세계 3위의 중국은 얼핏 보면 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땅은 13억 인구를 먹여살릴 만큼 물자가 풍부하지 않고, 특히 중국의 바다는 일본보다도 좁다. 미국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80%를 차지하나 중국에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불과 15%밖에 되지 않는다. 석유나 철광 등 지하자원도 미국이나 러시아의 20~30%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경지가능 총면적 중 50분의 1을 점유할 뿐이다. 그런 중국이 인류의 5분의 1을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린다는 것은 참 용하다. 중국인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생존적지는 좁아 동부의 평야지대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상하이시의 도시지역만 하더라도 서울시의 8배 인구밀도로 1㎢당 약 4만명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 5분의 1 인구가 세계의 50분의 1의 경작지에서 세계의 생활하기 적합한 생존적지의 7%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제아무리 중국의 힘이 커진다손 치더라도 지정학적 특성상 사막이나 고원이 대부분인 서쪽으로 나아가 보아야 별 볼이 없다. 결국 현대중국의 팽창욕구 주력방향은 동쪽의 바다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돌아누운 태평양

바다는 옆으로 퍼지기를 좋아하고 늘 움직인다. 바다는 자기확대를 좋아하고 자기 한정을 싫어한다. 바다는 도로라고는 따로 없고 바다 자체가 누구나 통할 수 있는 길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마저도 경계선을 모르고 살고 있지 않은가. 바다는 활동하기 좋아하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바다는 이 해안 저 해안에 부딪쳐 보기도 하고, 세계의 흐르는 물을 다 안아보는 것이다. 바다는 개방주의자요, 세계주의자인 것이다.

헤겔은 ‘바다는 정복과 무역을 위해 인류를 부른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다의 여왕 태평양을 바로 곁에 두고서도, 그 여왕이 부르는 노래 ‘자유와 무역’을 중국인들은 악녀의 유혹으로 알았을까? 중국인의 눈에는 뭍이나 대륙만 보였지 바다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아담 스미스는 1776년에 유명한 국부론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한 나라의 침체는 해외무역을 중시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으며, 쇄국은 반드시 자살로 향하게 된다'고 했다. 인류에게 있어 15세기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가 되었다. 인류는 뭍으로부터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바다는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막론하고 뭍위에 사는 모든 인류들을 향해 넓은 가슴을 활짝 펼쳤다.

이 중요한 시기에 하필 명태조 주원장은 항해 금지령과 해안 봉쇄령을 반포했다. 그는 역대 중국왕조 창업자가 으레 그러하듯, 홍건적의 졸병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세계 최대 최강의 대제국이었던 몽골의 원을 몰아내고 다시 한족 중심의 중국을 건설했다. 국가의 정치이념은 관방적 유가사상과 쇄국정책으로 유럽과 교역을 차단하는 대신 중국대륙을 관통하는 대운하의 완성을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해안을 통해 실어 나르던 공물을 해적들로부터 지키던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을 해체시켰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곡식과 물건만으로도 철저하게 자급자족이 이루어졌고 또한 강력한 전제적 정치력을 행사하기 위해, 무역을 통해 번 많은 돈을 가지고 세력을 행사하던 지방 토호들을 제압하여 외국과의 교역을 단절하게 된다.

이와 같은 ‘금해(禁海)’정책은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사회의 분업과 상품경제의 발전 및 자본주의 싹의 성장을 가로막은, 중국사에 있어서 가장 어리석은 자충수였다. 중국은 아시아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자 태평양을 누빌 수 있었던 역사적 선택의 좋은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오히려 태양을 다시 떠올리기 어렵게 태평양 연안에다 만리장성 아닌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돼지 앞에 진주라는 말이 연상되듯, 류큐라는 진주알 140여개를 일본에 고스란히 넘겨 주고 말았다. 중국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인 류큐를 중국은 바보처럼 자신이 꼰 새끼줄로 자신을 묶어 버렸다. 위대한 중국의 시대는 끝났다. 중국은 태평양을 영영 잃고 만 것이다. 태평양은 바다중의 바다요, 바다중의 황제이다. 바다는 본래 모든 생명의 고향이다. 지국의 돌변 속에서 일찍이 바다는 인류조상의 생명을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 보호하고 키워주었다. 그런 어머니의 바다. 태평양을 중국인은 외면하였다. 태평양 역시 중국을 외면하고 돌아누웠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G2가 되려면 미국과 함께 태평양을 반분해야 하며, 우선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을 봉쇄하는 철책 기능을 하고 있는 류큐체인을 돌파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인가. 지금 중국은 스스로 버리다시피했던 류큐를, 이미 13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굳어진 류큐군도 140개 섬과 해역을 몽땅 돌려달라고 한다.

힘이 좀 세졌다고 객기를 부리는 말로 여기며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하는데 있다. 개혁개방 초기 주로 국제무역과 경제관계를 통한 소프트 파워를 키워왔던 중국이 이제는 류큐 해역에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는 등 노골적인 무력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21세기 중화제국, 그 팽창주의의 야욕의 발톱이 류큐 해역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적나라하게.

글/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중국법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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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만 국립사범대학에서 수학한 후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과 중국인민대학, 중국화동정법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며 주 대만 대표부와 주 상하이 총영사관을 거쳐 주 중국 대사관 외교관을 12년간 역임한 바 있다.

 

(2011-03-20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