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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전통 |
서구문명에는 세 가지 전통이 있다. 이들 세 가지 전통이 섞여 내려오며 서로 영향을 주며 오늘의 서구문명을 형성하였다. 첫째는 헬라의 이성과 철학이다. 둘째는 로마의 법과 질서이다. 셋째는 히브리 예언자들의 사회정의(Social Justice)이다.
이들 세 가지 전통 중에서 두드러진 전통이 히브리 예언자들의 전통이다. 히브리 예언자들의 전통의 시작은 사무엘에서 시작된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가 무정부상태였던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지도력을 발휘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를 일컬어 마지막 사사요 첫 번째 예언자라 부른다.
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많고 많은 인물들 중에서 사무엘을 가장 본받고 싶다. 말하자면 당대의 성직자 사무엘이 내가 본받고 싶어 하는 인물의 첫째이다. 내가 그를 본받고 싶어 하는 내용은 세 가지 점에서다. 첫째는 그가 평생을 깨끗한 지도자로 살았던 점이다. 그는 철두철미한 Mr.Clean이었다. 사무엘상 12장 첫 부분에서 그가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은퇴하는 자리에서 나라의 영도자들과 왕과 자식들을 모아 놓고 이른 말이 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사무일상 12장 1~3절) 사무엘이 평생을 투명하게, 당당하게 살았기에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점이 내가 사무엘처럼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첫째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깨끗하게 사는 것이 가장 명예롭고 행복하게 하여 주는 점임을 실감케 된다.
예언자의 전통(2)
성경 속 예언자의 전통은 사무엘에서 시작된다. 그를 일컬어 최초의 예언자라 일컫는다. 그는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노년에 고향 라마에 낙향하여 젊은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웠다. 그 공동체에서 미래 역사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을 기르는 일에 전심을 기울였다. 그가 세운 공동체를 <라마 나욧>이라 한다. 라마에 세워진 공동체란 뜻이다. 그곳에서 사무엘은 젊은이들과 더불어 낮에는 노동하여 자립경제를 이루고 밤에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토론하며 민족의 나갈 길을 하나님께 묻는 시간을 가졌다.
라마-나욧 공동체에서 훗날 두 계열의 인재군(人材群)이 배출되었다. 첫째는 정치 지도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른 통치로 백성들을 이끌겠다는 뜻을 품은 인재들이다. 일컬어 메시아적인 정치(Messianic Politics)라 한다. 다윗과 히스기야, 느헤미야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예언자 전통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민족과 백성들의 나갈 길을 바르게 일러주는 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다.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이 위기를 만날 때마다 예언자들이 일어나 나라와 백성들이 나갈 길을 바로 제시하였다. 예언자들은 왕이나 지도자들이 어리석은 짓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랄하게 책망하며, 바른 도리를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당대에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대표적인 예언자가 아모스이다. 그는 변방에서 야생 무화과 밭을 일구던 농사꾼이었다. 그런 그가 예언자로 소명(召命)을 받은 후로 정의로운 사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였다. "오로지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 공의를 개울물 같이 흐르게 하라"(아모스 5장 24절)
예언자의 전통(3)
한국과 이스라엘은 닮은 점이 많은 민족이다. 먼저 지정학적 위치(地政學的 位置)가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히는 위치에 있는 반도국가로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렸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아세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만나는 꼭짓점에 위치하여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렸다. 그리고 종교심의 깊이에서 두 민족은 닮은꼴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종교적인 민족인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바이지만 그 점에서는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겨레는 종교성의 깊이로는 아세아 제일의 민족이다.
국민들의 기본 자질이 영특한 점에서도 그러하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들에서는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일컫기를 제2의 유태인(Second Jewish)이라 부른다. 풍속이나 문화면에서도 이스라엘과 한국인은 닮은 점이 많다.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풍습은 한국과 이스라엘만이 가진 풍습이다. 아기를 등으로 업는 습관도 그러하고 초상집에서 “아이고 아이고” 곡하던 풍습도 두 민족이 흡사하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면이 많으면서도 한 가지 뚜렷하게 다른 면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예언자들의 전통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전통이 없다 우리 겨레의 종교적인 뿌리는 무당종교인 샤머니즘(SHAMANISM)이어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지녔던 역사의식이나 사회정의 실현의 전통이 없었다.
이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예가 성서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성으로 성서를 창출하였으나 우리는 그들과 버금가는 종교성을 지녔으면서도 인류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신적 유산을 창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사야서, 예레미야서와 같은 예언자들의 글을 읽는 동안에 우리는 토정비결, 정감록 같은 글을 읽었다. 이사야서를 읽는 국민과 토정비결을 읽는 국민들 간의 정신세계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나마 우리에게 성서가 들어왔으니 깊이 읽고 묵상하여 이스라엘 이상의 영성을 기르고 예언자들의 전통과 역사의식을 가꾸어 나가야 할 때이다.
예언자의 전통(4)
앞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 민족과 히브리 민족은 종교성이 깊은 점에서는 서로가 쌍벽을 이룬다. 그러나 그 종교성으로 이루어 낸 종교문화에서는 차이가 뚜렷하다. 우리 민족의 종교적 전통의 뿌리는 Shamanism, 무속신앙(巫俗信仰)에 있고 히브리 민족의 종교적 전통은 성서와 탈무드에 있다. 무속신앙과 성서신앙의 차이가 무엇인가?
무속신앙의 3대 특징을 살펴보면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무속신앙의 3대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는 치병기복신앙(治病祈福信仰)이다. 치병기복신앙이란 글자 그대로 그 신앙이 추구하는 목표를 자신이 병 낫는 것과 복 받는 데에 두는 신앙체계를 일컫는다. 둘째는 비윤리성(非倫理性)이다. 자고로 무당이 굿풀이를 하면서 정직하게 살라 하거나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논한 적이 없다. 이런 점이 무속신앙이 지니는 한계(限界)이다. 셋째는 역사의식(歷史意識)의 문제이다. 히브리 종교의 특성은 철저한 역사의식 위에 기초하고 있지만 무속신앙에는 역사의식이 없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종교는 시대와 백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히브리 종교가 지니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이다.
이 점에서 한국교회가 지닌 약점이 있고 한계점이 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30년 가까운 세월에 많은 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아쉽게도 교회 안에는 치병기복신앙과 비윤리성 그리고 역사의식이 결여된 교회로 아직은 머물러 있다.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여 성서의 윤리성과 역사의식을 회복하여 나가는 과제가 오늘의 한국교회 일꾼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바람직한 사역의 모범을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의 전통에서 배울 수 있다.
(2012-10-10/15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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