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한 가지 큰 축복을 주셨다. 다시 시작하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누리는 데는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 용기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고, 용기 없는 사람들은 이미 주신 축복이지만 누리지를 못하고 시들어 간다.
나는 2년 전 구리두레교회에서 70세 정년으로 은퇴하였다. 은퇴란 말이 영어로는 Retire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 엑센트를 앞에 붙이면 의미가 달라진다. RE-tire가 되면 "자동차 바퀴를 다시 갈아 끼운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은퇴하면서 아직 건강이 쌩쌩하니 reTIre가 아니라 REtire하기로 마음먹고 동두천 산 깊은 곳에 6만평의 산을 샀다. 산중에 평탄한 산이 아니라 악산을 골라 샀다.
내 생각에 좋은 땅, 좋은 산을 구하여 개척하는 것은 개척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악산을 산 것이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이곳에 산을 깎아 건물을 지어 수도원을 세우고 교회를 세웠다. 학교를 세우고 운동장을 닦고 청소년을 위한 놀이시설을 세웠다.
처음부터 예산이 있어 시작한 일이 아니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남은 인생 전체를 투자하였다. 이제 2년이 지났지만 내 72년 일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안정되고 감사하다. 인생사는 복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감격이 입에서 자연히 흘러나오곤 한다.
얼마 전 나와 동갑내기 친구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목사 역시 같은 해 교회에서 은퇴식을 올린 목사이다. 이야기 중에 그가 나에게 물었다. "김 목사 은퇴목사의 노래를 알아?"하고 묻기에 내가 되묻기를 은퇴 목사의 노래란 것이 있어? 하고 물었더니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란 가요를 일러주면서 그 노래가 바로 은퇴목사의 노래라 하였다.
그 말에 열을 받은 나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해 질 때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러냐? 지는 해가 노을을 아름답게 만들며 사라져 가는 것이야"하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70이 넘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다짐한다.
내 목회사역 중에서 71세에서 80세까지 10년을 "내 목회의 황금기"로 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일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니 보람되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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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2) |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품행이 별로 좋지 못하였다. 공부가 하기 싫어 교과서를 팔아 영화관에 갈 정도였다. 그러다가 교실에 앉아 있기가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여 가출(家出)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무전여행(無錢旅行)이라 하였다. 윗주머니에 칫솔 하나 꽂고 헤르만 헷세 시집 한권 들고는 집을 나가 1년 반 동안을 떠돌았다. 진해에서는 식당 심부름꾼으로, 마산에서는 화장품 행상으로, 여수와 순천에서는 바늘장사를 하며 떠돌았다.
그러다 일 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되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장래를 위하여 집으로 들어가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열여덟 달 만에 귀가하였다. 다니던 학교는 이미 퇴학처리 되어 있었고 동기생들은 이미 대학생들이 되어 있었다. 대구성광고등학교에 편입하여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으나 그간에 놀았으니 실력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영어시간에는 줄줄이 모르는 단어이고 수학시간엔 기초실력이 없으니 잠만 쏟아졌다.
몇날 며칠을 고심하던 끝에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면서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중2 교과서를 구하여 자습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이왕지사 다시 시작키로 결심하였으니 되돌아서지 말고 나가자 다짐하고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쉬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니 진도가 빨리 나갔다. 3개월에 중2 과정을 마치고, 다음 3개월에 중3 교과서를 마쳤다. 그리고는 고1 교과서로 올라가 열심히 익혔더니 1년이 지나지 않아 고2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학원에 다닌 것도 아니고,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대학에는 수석합격이 되어 4년간 넉넉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중2 교과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내 일생에 큰 행운이었다.
한 평생 사는 동안에 때로는 좌절할 수도 있고,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하늘이 내려 주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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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3) |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에게 한 가지 축복을 주셨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축복이다. 이 축복을 누리려면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용기이다. 사노라면 본의 아니게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게 된다. 그럴 때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다. 숱한 사람들이 좌절하게 되었을 때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하여 낙오자가 되고 만다. 인생살이의 진면목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럴 용기를 지니지 못하여 실패자로 끝나고 만다.
나는 대학시절에 몸이 몹시 약하였다. 위장병에 불면증에 신경쇠약 증세까지 겹쳐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집안 가계에 40세 전에 죽은 분들이 많았기에 ‘나도 40세 전에 죽을 것이다’는 생각을 하며 지났다. 그런데 대학3학년 때 여름 어느 날이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실대고 사느니 산속 깊이 들어가 목숨 걸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결판을 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청도에서 내려 산속 깊숙이 들어갔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 계곡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던 3일째 새벽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듬뿍 받고 나니 세상이 새로워지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속으로부터 솟아올랐다. 그날부터 신앙생활도, 건강도, 인간관계도 모두 새롭게 시작하기로 다짐하고는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건강관리를 기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는 3가지 실천사항을 정하여 책상머리에 붙여 두고 어떤 일이 있어도 빠짐없이 실행하였다.
첫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되 정한 시간을 지킨다. 둘째는 아침기도 시간 후에 반드시 냉수마찰을 한다. 셋째는 식사관리를 위하여 정한 량을, 정한 시간에 먹되 100번씩 씹어 먹는다.
냉수마찰을 얼마나 열심히 하였던지 겨울방학에 고향 청송에 가서 새벽녘에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냇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냉수마찰을 하였더니 지나던 마을 어른이 이를 보고는 나를 정신이상으로 알아 소문을 내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다짐한 후 열심히 실천하기를 여섯 달 쯤 지나게 되니 건강에 자신이 생겨나고 활력에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나이와 성별, 신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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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4) |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여정’중에서)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장 16절)
나는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용하게도 오늘에까지 이르렀음을 실감케 된다. 그간에 넘어지기를 여러 번 하였고 실패의 쓰라림을 수차례 경험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지를 않고 다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절대로 오늘에까지 이를 수 없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게 되고 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움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나의 목회생활은 30세에 시작되었다. 금년으로 42년째 목회를 한다. 지난 42년 목회생활에서 2번 큰 위기가 있었다. 아예 목회를 그만 둘까 말까 고민하기까지 하였던 위기였다. 첫 번째는 청계천 판자촌에서의 목회 때였고 두 번째는 남양만 간척지에서의 목회시절이었다.
청계천 판자촌에서의 경우는 내가 마을 청년들과 넝마주이를 하며 목회하던 시절이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서 무리하게 빈민선교를 하던 중에 만성피로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먹어도 배고프고, 자도 잠이 오고, 쉬어도 쉴 수가 없는 증세였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식은땀이 흘러 이부자리가 흥건히 젖어 있는 정도였다. 그런 상태로 더운 여름 날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넝마주이를 하다 열병에 걸리게 되었다.
40도가 넘는 고열로 열흘이 넘도록 시달리게 되니 완전히 의욕을 잃고 목회를 중단하고 빈민촌을 떠나기로 하였다. 교회 간판을 내리고, 짐을 꾸린 후에 용달차를 부르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날 따라 교회 마당에 마을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놀고 있었다. 내 양심에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마을을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아이들이 흩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한 가정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호주는 폭행죄로 감옥에 가고 주부가 포장마차 장사를 하며 다섯 남매를 기르고 있는 집이었다. 그 집 다섯 아이들 신발이 방문 앞에 흩어져 있고 방문이 닫혀져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방문을 두드리며 열어 보았더니 다섯 남매가 줄줄이 방에 누워 있었다.
“너희들 웬일이니? 다른 아이들은 교회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너희들은 왜 방에 누워 있니 너희들 감기 걸렀니?”
내가 묻는 말에 13살 먹은 큰 형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엄마 사흘 전에 장사 나가시고는 안 들어와서 굶었어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가정에, 엄마가 사흘 동안 들어오지 않으니 아이들이 3일째 굶고 있는 것이었다. 이어서 다섯 남매가 일어나 배고프다고 울고 있었다. 나는 배고파 울고 있는 다섯 남매의 눈물을 보고 있다가 충격을 받았다. 3살짜리 막내아들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있는 중에 그 얼굴에서 예수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뜻은 내가 그 마을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렸던 교회 간판을 다시 걸고, 묶어 두었던 짐을 풀고는 다시 시작하였다. 그때 다시 시작하였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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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5) |
성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의 사람으로 대표적인 인물 한 명을 뽑자면 요셉이다. 그의 일생은 글자 그대로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삶, 오뚝이 인생이었다. 그는 틴에이저 시절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려 애급으로 끌려갔다. 그때의 요셉의 아픔과 서러움이 어떠하였을지는 가히 짐작할만하다. 종으로 팔려가 살게 된 집이 왕의 경호실장격이 되는 보디발의 집이었다.
요셉이 최악의 처지에 떨어졌으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록 종살이로 갔을지라도 자신이 처한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는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일을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돋보이기 마련이고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기 마련이다. 보디발 장관은 요셉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살림살이 전체를 관리하는 총무로 세웠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런 요셉에게 생각하지 못한 유혹이 다가왔다. 보디발의 아내가 꽃미남인 요셉을 탐하여 통정하기를 요구하여 왔다. 이때 요셉이 그 유혹을 물리치며 다음같이 말하였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모든 소유를 내게 위탁하였으나....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세기 39장 8~9절)
요셉의 거절에 자존심이 상한 그녀가 앙심을 품고 남편에게 요셉이 자기를 성폭행하려 하였노라 하였다. 그 말을 곧이들은 보디발은 요셉을 왕궁 지하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게 하였다. 당시의 정치범들은 왕이 죽어야 풀려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요셉은 그곳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최고의 모범수로 지냈다. 간수장이 그런 그를 높이 신뢰하여 옥중사무를 관장하는 직무를 맡겼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창세기 39장 20~23절)
드디어 요셉에게 기회가 왔다. 모든 희망이 끊어진 자리인 옥살이에서 일어나 총리로 발탁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셈이다. 요셉의 일생은 최악의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최상의 자리로 다시 일어 설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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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6) |
성경에 75세의 나이로 다시 시작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는 원래 지금의 이락 땅인 하란에 살고 있었다. 그가 75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라 이르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장 1절)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버려야 한다. 버리지 못하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75세 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버리고) 가라 이르셨다. 아브람이 이 말씀에 순종하여 버리고 떠났기에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시작할 수 없다 개인도 그러하고 기업도 그러하다.
중국에서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이 있다. 항아리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땅콩을 넣는다. 항아리의 입구는 원숭이의 주먹이 겨우 들어갈 만한 넓이의 항아리이다. 그 항아리를 원숭이들이 다니는 길목에 둔다. 그러면 원숭이는 항아리 속의 땅콩을 먹으려고 손을 넣어 땅콩을 한 움큼 쥔다. 그러나 항아리에서 손을 빼려면 손에 쥔 땅콩 탓에 손이 빠지지 않는다. 그때에 다가가 원숭이를 잡는다. 원숭이는 도망가려 하지만 손에 쥔 땅콩을 놓지 못하여 잡힌다. 그래서 원숭이를 잡으려면 항아리와 땅콩만 있으면 된다.
사람들 중에는 이런 원숭이를 닮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진 것들을 놓지 못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얽매이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다. 성장할 수 없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브리서 12장 1절)
코닥, 후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필름이 아그파 필름 이다. 아그파 필름은 1936년 세게 최초로 컬러 필름을 개발한 독일 회사이다. 작곡가 멘델스죤의 아들인 폴 멘델스죤이 세운 회사이다. 그 회사는 2001년 최대 흑자를 기록하였다가 2005년에 파산하였다. 최대 실적에서 파산까지 불과 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파산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통적인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에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필름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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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7) |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영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여정 중에서)
나는 42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나의 목회의 시작은 엉뚱하게도 넝마주이로 시작되었다. 넝마주이는 온종일 쓰레기통을 뒤져 거기서 쓸 만한 물건들을 건져내어 살아가는 업이다. 넝마주이가 겉보기로는 하찮은 직업인 것처럼 보이지만 넝마주이 정신 혹은 넝마주이 근성을 온 몸으로 익히고 나면 인생살이에 큰 자산이 된다.
넝마주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로 “넘어져도 쓰레기통 곁에만 넘어져라”는 말이 있다. 어쩌다가 실패하여 넘어질지라도 쓰레기통 곁에만 넘어지면 쓰레기통을 뒤져 쓸 만한 물건들을 건져내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다. 나는 30세에 청계천 빈민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빈민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살겠노라는 의욕을 품고 들어갔으나 굶는 집에 밀가루 사다 주고, 아픈 사람 병원에 업고 다니는 일들로 그나마 있던 돈을 다 쓰고나니 나 자신이 굶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의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시작한 것이 넝마주이였다. 마을 젊은이들을 모아 뚝섬지역을 구역으로 삼고는 넝마주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몸에 익힌 넝마주이 근성이 70이 넘은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지금은 동두천 산골짜기에 6만평의 산을 구입하여 이곳에 수도원, 교회와 학교를 세워 개척자로 살고 있다.
빈손으로 시작한 일이어서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마음에 흔들림 없이 꿋꿋이 일하고 있다. 넝마주이 근성의 핵심이 되는 바닥정신과 개척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이 몸에 베여 있기 때문이다. 넝마주이 정신을 몸으로 익히고 나면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왜냐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쓰레기통이 없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인 숲속창의력학교는 일반 학교와는 다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몸도 마음도 시들어 가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이다. 지금은 30명의 학생만 있을 뿐이지만, 들어오고 싶어 하는 대기 생이 줄을 서고 있다. 이 학교에 입학하면 첫 번째 하는 일이 스마트폰을 반납하는 일이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집에서, 학교에서, PC방에서 살아오던 습관, 생각, 행동 모두를 버리고 다시 시작하게 한다. 이 학교에 와서 한 달 가까이 지내고나면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들어오던 때의 시들어가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생생하고 활기찬 청소년들로 바뀌어 간다. 늙은이들에게나 젊은이들에게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은총이다. 그런 축복과 은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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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8) |
독일의 신학자였다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하여 미국으로 옮겨가 프린스턴대학에서 강의하였던 유명한 신학자가 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이다. 그가 용기, Courage에 대하여 내린 정의가 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용기란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두 번째, 세 번째 중요한 것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진정으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실패하였을 때에, 좌절하게 되었을 때에 그 자리에 머물지를 말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이다. 사람들은 왜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가? 자신이 실패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감히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워드 슐츠란 사람이 특별한 커피점을 세울 계획서를 손에 들고 투자할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믿고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거절당할 때에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사람을 찾아 나섰다. 217명으로부터 거절을 받았다. 그러나 218번째로 만난 사람으로부터 투자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바로 스타벅스 커피점이다.
월트 디즈니는 허허 벌판에 디즈니랜드를 세울 계획서를 손에 들고 이 은행 저 은행을 찾아다니며 투자를 설득하였다. 그러나 어느 은행도 백수건달 같은 그를 믿으려 들지 않았다.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계획서를 들고 은행들을 찾아다닌 결과 드디어 한 은행이 투자를 결심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디즈니랜드가 공전의 히트를 쳐서 세계의 디즈니랜드로 자라게 되었다. 지금도 디즈니랜드는 고맙게도 투자하여 준 그 은행만을 거래하고 있다.
당신도 하워드 슐츠처럼 할 수 있는가? 월트 디즈니처럼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217명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또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20년을 노력하며 기다리고, 실패할 때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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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용기(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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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편 23, 24절)
70을 넘는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지 절실히 느끼는 바가 있다. 한 달 두 달 살아가는 것은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지난 세월 5년, 10년을 되돌아보면 내 생각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왔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온 사람은 모든 일이 순탄하고 순조로울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도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하게 됨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넘어지기는 하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넘어지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다시 일어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손으로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넘어져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넘어지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넘어졌을 때에 다시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신다. 그래서 잠언 24장 16절에서 이르기를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하였다.
(2013-12-07/18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