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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국을 배워라!” WSJ 베이징올림픽 질타

Smart Lee 2008. 4. 13. 13:06

“중국, 한국을 배워라!” WSJ 베이징올림픽 질타

‘올림픽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공헌했다. 왜 중국은 그렇게 못하나?’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베이징 올림픽 특집판을 발행하며 한국을 올림픽을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모범 사례로 들었다.

WSJ는 12일(현지시간) 8쪽의 베이징 올림픽 특집판을 발행,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베이징 올림픽의 문제와 중국의 현실 등 민감한 소재들을 다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저널은 3면 톱으로 올린 기사에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한국 대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을 때만 해도 군사독재국가였던 한국이 국제사회의 여론에 부응, 헌법을 개정하고 자유민주선거를 실시해 성공적인 민주국가로 정착한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저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중국을 2008 올림픽 개최국으로 결정했을 때 딕 파운드 캐나다 IOC 위원과 중국 인사들이 올림픽이 중국의 민주주의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시켰다. 당시 위안웨이민(袁偉民) 체육부 장관은 올림픽 개최권 획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중국은 인권 향상의 바른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을 넉달 앞둔 지금 중국은 이런 변화의 약속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국내의 비판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해외에서는 수단, 미얀마와 같은 국민을 억압하는 정권을 돕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 요구 시위 사태는 중국의 열악한 인권의 현실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다. 중국의 민주운동가들은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고 파룬궁 탄압 등 종교적 박해를 가하는 중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딕 파운드 IOC 위원 “한국과 중국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국은 중대한 정치 변혁의 와중에 일본과 산업민주주의의 경쟁을 하는 처지였지만 현재의 중국은 그런 필요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은 올림픽을 통해 민주주의를 앞당긴 한국과 달리 올림픽을 군사대국의 위상 과시와 비민주적인 제3세계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자체 위성을 최초로 발사할 예정이며 달에 우주인을 착륙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

중국은 ‘경제 발전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기치 아래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현대적이고 산업화된 국가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판가들은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을 납득하지 못한다. 일부에서는 중국과 한국을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한다. 알프레드 센 전 위스콘신대학 역사학 교수는 “중국의 현 상황과 1988년 한국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중국은 나치 독일의 베를린 올림픽과 옛 소련의 모스크바 올림픽처럼 세계 많은 나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강압 정권으로 비교되야 한다”고 말했다.

1896년 태동한 올림픽이 정치적 분규에 휘말린 첫번째 무대는 1908년 런던올림픽으로 당시 러시아는 그들이 지배하던 핀란드의 메달을 별도로 집계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중국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대만 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이유로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개막 열흘을 앞두고 경찰과 군인들이 수백명의 시위대를 학살하는 참사가 있었고 1972년 뮌헨 올림픽은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을 사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올림픽의 정치적 이슈가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은 바로 서울올림픽이었다. 한국이 올림픽 개최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한국 현대사와 관련한 많은 책을 집필한 언론인 조갑제씨는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한국의 지도자들은 올림픽이 한국의 번영을 앞당기고 북한을 약화시킬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한국을 인정하지 않던 다른 공산국가들과 북한을 분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둔 1987년 한국은 경기장 건설 등 대대적인 올림픽 준비로 분주했지만 거리에서는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한국의 시위 사태는 올림픽 관계자들은 물론, 수십억달러를 투자한 스폰서들과 방송사들을 불안하게 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이 올림픽을 제대로 개최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고 런던과 로스앤젤레스같은 도시들은 서울 대신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후계자로 꼽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올림픽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당시 야당의 지도자들과 회동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그해 6월2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때 나는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가 귀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닷새 후인 6월29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헌법을 개정하고 자유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해 12월 노 대통령은 최초의 민주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됐고 1992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했다.

저널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6·29선언 하루 전 보좌관에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저널은 중국은 한국과는 달리 대대적인 민주화 시위 등 내부의 운동과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도 없는 등 여러가지로 상황이 다르다면서 “우리는 많은 난제들을 풀기 위해 민주적인 방법들을 동원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8-04-13 뉴욕 뉴시스 노창현 특파원)

기사제공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