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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존 템플턴의 경우

Smart Lee 2008. 8. 26. 17:18

 

                   위기는 기회-존 템플턴의 경우


요즘 우리 사회는 불황으로 인하여 몹시 어렵다. 이렇게 어려울 때가 되면 서민들이 더욱 힘들게 되고 중소기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살아남기에 사력을 다하게 된다. 불황 탓에 모두들 마음이 움추려들게 되고 투자의욕과 개척정신이 사그라진다. 이런 때에 20세기 가장 위대한 투자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존 템플턴 같은 경우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는 지난 7월 9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성공론』과 『행복론』을 읽어보면 그가 단순한 경제인이나 투자자가 아니라 성직자에 준하는 인품과 절제력을 갖춘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

그는 불경기를 맞아 남들이 비관론에 젖어 있을 때에 투자하고 남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는 낙관론일 때에 팔곤하였다. 그래서 그는 1997년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에 가장 먼저 한국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주식을 사들였고 9. 11 테러사건이 일어나자 주식을 사들였다. 이와같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도망치기에 바빴던 때에 투자하고 주식을 사들였다.

그는 뉴욕 월스트리트에 살며 투자하지를 않고 카리브해 바하마 깊숙한 곳에 은거하며 투자활동을 하였다. 템플턴은 자신이 쓴 책인 『성공론』에서 “햇살만 내려 쪼이는 곳은 사막이 된다”는 말로 호경기만 있는 사회는 오히려 위험한 사회임을 지적하였다. 옳은 말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풍우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그런 폭풍우가 대지를 적시고 동식물을 살찌운다. 우리들 한국인들은 위기에 강한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도안 숱한 위기를 거치며 경제도 사회도 튼튼한 체질로 자라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황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국민들이 마음을 모아 나가면 지금의 위기가 선진경제, 선진한국으로 나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08-08-26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월가의 신화 존 템플턴 95세 일기로 지다

뮤추얼펀드계 지존…38년 평균수익률 14.5%

'영혼이 있는 투자자, 세상을 떠나다.' 월가 최고 투자자이자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평가받는 존 템플턴 경이 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5세. 그는 1968년 월가를 떠나 활동해 오던 카리브 해안에 있는 바하마 나소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템플턴은 월가 최고 고수로 평가받았다. 단순히 투자만 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덕성과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투자세계는 물론 일반사회에서도 귀감이 됐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도 '영혼이 있는 투자자'이자 '박애주의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템플턴은 1912년 미국 테네시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향에서는 처음으로 예일대에 진학할 정도로 수재였다. 예일대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고 1937년 월가에 뛰어들었다.

월가에 입문하기 직전인 1936년 7개월간 35개국을 돌아본 세계 일주 경험은 그가 세계적인 글로벌 투자자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투자자로서 그의 재능이 인정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1939년 유럽에서 2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증권시장에서 1달러 미만에 거래되고 있던 종목에 대거 투자했다. 당시 1달러 미만에 거래되고 있던 104개 종목을 각각 100주씩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둔 일화는 아직도 회자될 정도다.

그는 195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뮤추얼펀드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설립해 뮤추얼 펀드 운영에 나섰고 1992년 프랭클린 그룹에 4억4000만달러를 받고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템플턴 펀드는 출범 당시 1만달러를 투자해 프랭클린 그룹에 넘길 때까지 보유했다면 200만달러로 성장할 정도로 높은 투자수익을 냈다. 이는 연평균 14.5% 수익률에 해당한다.

존 템플턴의 펀드운용 성과는 이처럼 탁월했고 그의 이 같은 명성은 월가는 물론 전 세계 뮤추얼 펀드 업계의 신화가 됐다. 템플턴은 1999년 '머니 매거진'에 의해 '금세기 최고 주식 투자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템플턴은 세계의 투자 거물로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검소한 태도로 일관했다. 젊은 시절 그는 방 5개짜리 아파트를 25달러의 가구로 채웠다. 그는 또 재산이 25만달러를 넘어서기 전까지 200달러 이상 자동차는 사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씀씀이를 아끼지 않았다. 템플턴은 투자 성공으로 모은 재산을 바탕으로 1972년 상금이 100만파운드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템플턴상을 만들어 신앙을 고취하거나 영적 분야의 발전과 종교와 과학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 헌신한 인물 등에게 시상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적 삶을 살았던 마더 테레사 수녀, 우리나라의 한경직 목사,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 프랑스 테제 공동체 설립자인 로저 수사 등이 템플턴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1987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존 템플턴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약 15억달러의 기금으로 해마다 7000만달러를 물리학 우주과학 생물학 사회과학 등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발전과 종교문제 연구에 지원하고 있다.

[2008.07.09 매일경제 뉴욕 = 위정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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