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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종교를 넘어 큰별이 지다.

Smart Lee 2009. 2. 17. 18:13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종교를 넘어 큰별이 지다.

가톨릭계 '큰별' 김수환 추기경 선종

 

 

16일 어제 우리사회의 큰 별이 하나 졌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최고 수장인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물론 지위적으로도 추기경이라는 직위가 교황 다음가는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범국민적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천주교의 수장으로써뿐만이 아니라 "종교를 뛰어넘은 시대

양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주교의 전파와 천주교인들의 보호를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닌 독재와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며

약한 자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문제가 있을때마다 정의로운 양심의 소리를 내어왔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권, 광주항쟁,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6월항쟁, 김영삼 정권, 노무현 정권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일침을 가하며, 말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당시의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

김수환 추기경의 가장 큰 일화중 하나인 1971년 성탄미사 사건이다. 그는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상황에서"정부와 여당에 묻겠습니다.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입니까?"라며 박정희 대통령에대해 강도 높은 직접적인 비판을 하였다.

 

또한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다'며 금기시 되어있던 광주항쟁에 대한 언급을 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6월 항쟁시 명동성당으로 몰려든 시위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몰려든 경찰들에게"공권력을 투입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라며 한치의 물러섬을 보이지 않으며 명동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써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절대 권력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가하는 모습으로 힘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의 목소리였고, 천주교를 넘어 힘없고 약한 자들의 보호막이 되어준 종교를 넘은

성인이고 이 시대의 어른이였다.

 

그는 2009년에 선종하였지만 오랫동안 사람들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종교계 큰별’ 김수환추기경,“사랑 또 용서″

김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16일 오후 6시12분 별세했다.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善終) 했다.

김 추기경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8월29일부터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세상에 공개된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다.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김 추기경은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해왔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올 때면 “대속할 일이 남아 있어 주님이 나를 살려두시나 보다”며 삶에 초연하기도 했다. 남의 죄를 대신해 당하거나 속죄하는 것이 대속(代贖)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주교가 됐다. 이듬해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 탄생이다. 이후 30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2차례 역임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16일 오후 6시12분 별세했다.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善終) 했다.

김 추기경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8월29일부터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세상에 공개된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다.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다.

김 추기경은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해왔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올 때면 "대속할 일이 남아 있어 주님이 나를 살려두시나 보다"며 삶에 초연하기도 했다. 남의 죄를 대신해 당하거나 속죄하는 것이 대속(代贖)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주교가 됐다. 이듬해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 탄생이다. 이후 30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2차례 역임했다.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 됐을 때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사하는 교회’, ‘역사적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후 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곧 관심을 가졌다. 독재와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서는 강경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적 순간마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7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탄압 받는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 회복을 위해 일했다. 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회는 오랫동안 정치권력에게 배제 당했지만 결국 천주교회의 지위는 격상됐다.

김 추기경은 장애인과 사형수, 철거민과 빈민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기구로 설립, 소외된 이들을 돕는 서울대교구의 복지시설을 늘리는 데에 힘을 쏟았다.

최고의 종교 지도자였지만 스스로를 늘 부족하다고 여겼다. 99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70평생을 회고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책을 2권 펴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다.

이들 산문집에는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고백, "예수와 닮은 사제로서 살아오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다. 자신의 신념을 온 몸으로 실천하다 떠난 김 추기경은 종교 지도자를 넘어선 대한민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

 

(2009-02-16 서율 뉴시스 윤근영 기자)

 

 

‘국민의 큰 별’지다

 

20일 입관… 모습 마지막 공개

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20일 오전 10시 장례 미사를 끝으로 세상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 자격으로 김 추기경 장례식 진행했다. 장례 하루 전인 19일 오후 4시부터 입관 의식을 거행했다. 4시20분부터 30분 가량 염습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염습 후 김 추기경의 유해에는 생전에 추기경이 사제직을 수행하는 동안 입었던 제의(祭衣)가 입혀졌다.

김 추기경은 일반 사제들의 제의 외에 ‘주교 복장’에 해당하는 필레올루스(Pileolus·진홍색의 둥근 모자), 주교관(Mitra·주교의 품위를 상징하는 사각모자)을 쓰고 팔리움(Palium·양털 허리띠)를 차게 되며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는 주교반지를 끼고 주교십자가를 가슴에 지니게 된다.

입관예절에서 현재 유리관에 있는 김 추기경의 유해는 이때 삼나무로 만든 일반 관에 옮겨졌다. 관은 일반사제들의 것과 거의 같지만 김추기경이 주교 모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일반 관(2m)보다 30㎝가 길고 뚜껑에 김 추기경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입관된 뒤에는 더 이상 김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조문은 이날 자정까지 계속된다.

고별사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디야 대주교, 서울대교구 최승룡 신부, 문화관광체육부 유인촌 장관, 한국평신도협의회장 한홍순 교수가 전했다. 장례 미사가 끝나면 김 추기경의 유해는 명동성당을 떠나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에 옮겨져 안장된다.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을 교황 특사로 임명해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를 교황장으로 치루도록 했다. 19일 오전 조문을 위해 명동성당을 찾은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는 정진석 추기경에게 교황의 이름으로 장례미사 등 전례를 접전하라며 교황의 뜻을 전달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본래 추기경 선종시 교황이 직접 장례를 주관하는 것이 관례지만 지리적 여건 등으로 인해 정진석 추기경을 교황특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 추도사 전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끼며 추기경님과 모든 한국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랫동안 서울의 가톨릭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추기경단의 일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노고에 보답해 주시고 그분의 고귀한 영혼을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화로 맞아들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장례미사에 모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족과 모든 분에게 주님의 힘과 위로에 대한 보증으로서 진심으로 사도의 축복을 보내드립니다.

 

김수환 추기경 묘비명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20일, 용인 천주교 공원묘원 성직자 묘역에 묻힐 예정인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진다 장례위원회의 홍보담당인 허영엽 신부는 장례 나흘째인 19일 “묘비명에는 추기경의 사목모토와 시편 23편1절의 문구를 새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목 표어는 사제가 신도를 지도해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사목하겠다는 큰 방향을 담아 정한 것으로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는 ‘너희가 모든 이를 위하여’ 다. 시편 23편1절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내용의 문구로, 평소에 김 추기경이 가장 좋아했던 성경 구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 문구들은 한글과 라틴어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새겨진다.
허 신부는 “시편 23편1절은 몇년전에 추기경께서 친한분들에게 묘비명으로 뜻을 밝혔었다”며 “이 문구들 이외에 출생과 사망일자정도만 추가되며 약력 등은 명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묘비 크기도 일반 신부의 것과 같은 크기로 설치된다.

 

청와대 “김추기경 선종, 사회통합 계기돼야”


청와대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관련해 “김 추기경 선종을 계기로 조성된 사회통합의 분위기가 좀 계속돼 경제살리기의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난 며칠간은 모처럼 여야도 이념의 차이도 없이 온 나라가 하나 돼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했다”면서 이 같이 말했습니다.  한편, 이 대변인은 청와대 행정관의 e 메일 홍보지침 논란에 대해서는 재발방지책과 관련해 “개인적인 돌출행위는 어디든지 있다”면서 “근무기강을 세우는 것 이상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2009-02-21 코리아 포스트)

 

김수환 추기경 선종, "그는 교파 넘어 한국사회 큰 어른"

개신교계 지도자들, 김 추기경 선종 소식에 애도의 뜻 표해

 가톨릭을 넘어 한국의 대표적 종교 지도자로, 오랜 세월 동안 국가 발전과 평화를 위해 기여해온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경 노환으로 선종하자 개신교계에서도 일제히 추모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대표 김삼환 목사, 이하 NCCK) 권오성 총무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자 종교계의 어른이 돌아가셨다”며 “그분이 살아계시는 동안 우리 사회 민주화나 인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애쓰셨던 것을 생각하면 슬프다”고 했다.

 

권 총무는 “NCC로서는 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을 함께해온 지도자이시기에 더욱 애석하다”며 “후배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계기로 교회가 하나되고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데까지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권 총무는 또 김삼환 회장과 추모미사 참석 일정을 의논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는 특히 북한동포돕기운동과 관련,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일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 목사는 “그분은 가톨릭은 물론이고 한국 종교계에서 참 존경을 받던 분”이라며 “나라와 민족을 참 품는 그런 넓은 마음을 지녔고, 우리 사회에 우리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바로 제시했던 귀한 분이었다”고 했다.

 

김명혁 목사는 “십수년 전부터 강원용 목사님과 함께 북한 문제에 대해 동포들을 끌어안고 돕는 일을 함께 하셨고, 나와 법륜스님과 오태선 신부 세 사람이 실무일을 했었다”며 “그분들과 같이 넓은 마음으로 지도해 주시는 분들과 일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했다.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김수환 추기경님은 과거에 우리나라가 독재 치하에 있을 때나, 혹은 최근에 너무 좌편향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나 항상 소신껏 우리가 나아갈 길을 말씀해 주셨던 분”이라며 “그분이 계셨기에 우리나라가 바른 길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서 목사는 “이 시대 어른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었고, 그래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며 “그분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큰데 후배들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종교를 넘어 정말로 잊지 못할 어르신”이라고 안타까워했다.

 

NCCK 국제위원장 박종화 목사는 김 추기경에 대해 “교파를 초월해 성직자의 산 표본이자, 겸손과 헌신, 그리고 통합적 지도력을 보내주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박 목사는 “김 추기경님은 한국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모범이 되시고 감동을 주셨다”며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정신적 리더로서 기독교 전체를 이끌어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박 목사는 “김 추기경님이야말로 굉장한 에큐메니칼 리더”라며 “사회적으로는 시대에 따라 예언자적 본래의 사명과 교회 자체의 제사장적 업무를 잘 조화해서 교회를 이끌어 오신 분”이라고 했다.

 

구세군 전광표 사령관 또한 “억장이 무너지는 듯, 교계의 성벽이 이그러지는 듯한 놀람에 사뭇 말문이 막힌다”며 “그렇게도 외치시며 염원하셨던 평화, 통일, 사랑을 외면한 채 떠나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필경 주님의 나라에 이르러 간구하시며 떠난 것”이라고 애도했다.

 

전 사령관은 “전쟁의 여진을 막고, 이산가족의 한스런 눈물을 달래고, 고통 속에 신음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셨던 자애로운 모습, 정치 사회, 종교의 불신 속에서도 정의를 위해 중용의 도를 지켰고, 종교간 대화의 틈바구니에서도 화해의 기지를 보였던 그 모습은 이 땅에 길이 남을 것”이라며 “이제 고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품으로 가셨다. 우리는 고인의 본을 받아 한 마음으로 살면서 진리를 바르게 행할 것”이라고 했다. 

 

(2009-02-16 한국=크리스천투데이 류재광 기자)

종교계 큰 별이 지다‥'김수환 추기경'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