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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영 기자의 "관용과 화해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비결)"

Smart Lee 2010. 12. 5. 19:46

이여영 기자
라이프스타일 전문기자

 
                       관용과 화해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비결)
                                                                                                                   이여영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 비결, 관용과 화해

 

드라마 시청률 기록을 연신 갈아치웠던 <제빵왕, 김탁구>(KBS 2TV)는 참 희한한 드라마다. 요즘 드라마치고는 제목이나 소재가 너무 평범하다. 김탁구라는 주인공 이름은 어떤가. 또 빵을 만드는 이야기라니. 유치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스토리 전개도 마찬가지다. 출생의 비밀이나 복수극이란 막장 드라마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빤하다 싶을 만한 성공 스토리다. 게다가 실제 제빵회사와 실존 인물을 드라마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드라마는 방영조차 되지 못할 뻔 했다. 실존 인물의 어머니가 출생의 비밀 등 사실과 다른 드라마적 요소를 문제 삼아, 마지막 순간까지 방송 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간대 경쟁작들과 달리, 이 드라마에는 슈퍼스타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이런 불리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인기가 있다. 인기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전례 없이 빅히트중이다. 작가나 PD, 제작사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데 방송가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 하나 있다. 선하고 성실한 사람이 이긴다거나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식의 고전적 스토리다. 그것이 오히려 시청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막장에 가까운 설정에, 복수와 폭력이 대세인 상황에서 정직한 성공과 관용, 화해를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 드라마와 차별화 되는 요소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성그룹 회장 구일중(전광렬)의 서자인 김탁구(윤시윤)는 양모 서인숙의 방해 등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탁구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에 잠시 젖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실력을 갈고닦아 성공을 거둔 후에는 관용과 화해에 앞장선다.

 

사실 이 드라마가 1980년대에 등장했더라면, 지나치게 진부하다고 외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복수와 폭력이 주조를 이루는 대중문화계에서는 지나치게 진부한 면이 바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실력으로 이룬 성공, 그 후의 관용과 화해야말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보편타당한 진리라는 반증이 아닐까? 일터에서 장기적으로 이기는 방법도 결국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깐의 술수나 요령이 승부수처럼 보이더라도, 궁극적으로 이기는 쪽은 정직한 승부를 펼친 이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관용과 화해야말로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 모든 복수와 폭력의 근원은 증오의 감정이다. 과거 일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 마음은 매몰비용이다. 그건 이미 벌어진 일로, 돌이킬 수 없다. 미래의 일을 결정하는 데 증오의 감정이 기준이 돼선 안 된다. 복수와 폭력이 결코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10-12-03 넷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