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바른 신앙 좋은 교회

Smart Lee 2013. 11. 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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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 좋은 교회(1)

한국교회 교인들의 열심 있는 신앙은 세계에서 알아준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주일 지키기, 새벽기도, 교회봉사, 십일조헌금 등은 다른 나라나 다른 교회에서는 유래가 없는 열심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열심 있는 신앙 이전에 바른 신앙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그 열심의 내용이 성경적으로 바르지 못하면 그 열심이 오히려 자신과 교회를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에 참 믿는 자를 볼 수 있겠느나?”고 탄식하셨다. 소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만 참다운 신심(信心)을 지니고, 바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적을 것을 이르신 말씀일 것이다.

 

문제는 교인들의 그런 순수하고 열심 있는 신앙을 오용하고 오도하는 지도자들이 있는데서 문제가 심각하여진다. 성경적, 신학적 기초가 빈약하고 상식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 순진한 교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 지도자들이 나타낼 것을 예상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이르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태복음 7장 15절, 16절)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아예 선생 곧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다음같이 말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야고보서 3장 1절)

이 말의 의미는 선생이나 목사가 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진실 되게 감당하지 못할 선생이나 목사 혹은 지도자는 되지 말라는 의미이다. 함량미달의 목사와 지도자가 많은 이 시대에 꼭 적합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바른 신앙 좋은 교회(2)

 

열심 있는 신앙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른 신앙이다. 바로 알고 바로 믿는 신앙에 열심이 있어야지, 바르지 못한 채로 열심만 있어서는 그릇된 길로 나가기 쉽게 된다. 한국교회들 중에는 열심은 있는데 바르지 못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그건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바른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어떤 내용 어떤 조건을 갖춘 신앙이 바른 신앙인가?

바른 신앙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갖춘 신앙이다.

첫째는 복음적인 신앙이다.

복음적이란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확신 위에서 지금 죽어도 천국으로 간다는 확실한 소망을 지닌 신앙이다. 그런 소망 중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신앙이다. 그런 신앙이 복음적 신앙이다.

 

둘째는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자세이다.

성경적이고 건전한 교회관을 지닌 신앙이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를 둔 교회론이 확실하고 분명하여야 한다. 교회론이 불확실하거나 그릇된 열심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비로 흐르게 된다. 바른 신앙은 예수중심, 교회중심, 말씀중심인 신앙이어야 한다.

 

셋째는 역사의식이다.

이 부분이 한국교회가 가장 약한 부분이다. 기독교의 자랑이 올바른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이란 현재의 역사와 미래의 역사를 교회가 책임지겠다는 정신이다. 교회 안과 밖의 백성들의 건강하고, 정의롭고, 행복한 삶을 교회가 세워나가겠다는 사명감이다. 소위 복음적인 교회라 자처하는 한국교회들 중에 역사의식이 빈약한 교회들이 많다. 더욱이나 한국의 대형교회들 중에 성경적인 역사의식을 지니지 못한 교회들이 많다. 그래서 교세에 비하여 사회적 국가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제부터나마 극복하여 나가야 할 과제이다.

 

바른 신앙 좋은 교회(3)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조건을 갖춘 교회일까? 신학에서는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 3대 요소가 있다. 이들 3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갖춘 교회가 좋은 교회요 교회다운 교회이다.

첫째는 말씀(Kerigma)이다.
둘째는 사귐(Koinonia)이다.
셋째는 섬김(Diakonia)이다.



좋은 교회는 말씀이 살아 있는 교회이다. 말씀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육신이 된 말씀으로써의 그리스도이다. 둘째는 기록된 말씀으로써의 성경이다. 셋째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으로써의 설교이다. 그러기에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 곧 목사가 중요하다. 바른 목사, 바른 설교자가 좋은 교회를 이루는 첫째 조건이다. 그렇다면 바른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내용은 무엇 무엇인가? 다섯 가지를 갖춘 목사가 좋은 설교자이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복음적 이해가 분명하고, 신학적 훈련에 기초가 튼튼하여야 한다. 둘째는 자신의 일상적인 삶과 선포하는 설교의 내용이 일치되어야 한다. 적어도 일치되도록 애쓰는 노력이 있는 설교자여야 한다.

셋째는 영적상상력을 지니고 비전을 선포하는 능력이 있어, 성도들이 그 비전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게 하는 설교자여야 한다.

넷째는 정직함과 일관성에서 교인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교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설득력 내지 전달능력이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기를 작금의 한국교회의 위기는 '강단의 위기'라 한다. '강단의 위기'라 함은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어지지를 못하고 있는 위기이다.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설교자가 설교를 하고 회중을 이끌어 가기에 일어나는 위기가 '강단의 위기'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여 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바른 신앙 좋은 교회(4)

 

김구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평생을 몸 바쳐 싸우는 중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지킨 신앙인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자격으로 귀국한 이후 선생이 머물었던 집이 경교장이다. 경교장에 도착한 날 다음 날부터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기 전날까지 선생은 하루도 새벽기도를 쉬는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를 드린 후에 국사에 임하곤 하였다.

 

김구선생께서 1945년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 청중들 앞에서 강연한 내용들이 책으로 나와 있다. 서점에 가면 김구전집 12권이 있다. 교회들이 이런 전집은 한질씩 구입하여 교회도서실에 비치하여 두고, 청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신앙 인물들의 이야기는 익숙하게 들어왔으나, 이 나라에서 앞서 간 선배들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았는지에 대하여는 듣지 못하였다. 설교자들이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설교자들은 교회 안의 젊은이들에게 김구선생, 이승만 박사, 안창호 선생, 이승훈 장로, 이상재 장로, 김교신 선생, 조만식 장로 같은 교회와 민족의 선각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런 선배들은 예수사랑과 겨레사랑, 교회 사랑과 조국사랑을 한 가슴에 품고 살았던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교회와 겨레에 유익한 일이라면 목숨조차 기꺼이 바치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던 선배들이었다.

 

김구선생께서 1945년 해방 되던 해 11월 어느 날 대중 앞에서 연설한 내용이 앞에서 말한 김구전집에 실려 있다. 그 중에 다음 같은 부분이 있다. 읽는 우리들의 가슴에 뜨겁게 닿는 내용이다.

 

"이제 세워질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은 기독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제 세워질 나라에서는 경찰서 열 개를 세우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선각자들과 마찬가지였지만 김구 선생은 새 나라를 세워나감에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던 분이었다. 제대로 된 교회 하나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기초가 됨을 김구 선생은 알고 있었다. 우리 후배들이 이런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설교하는 목사라면 이런 선배들의 신앙과 경륜, 꿈과 비전을 계승하여 나갈 수 있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른 신앙 좋은 교회(5)

 

지금 한국교회에는 대형 교회들이 많다. 대형교회란 신도수가 만 명이 넘는 교회이다. 듣기로는 세계 10대 대형교회들 중에 7~8개 교회가 한국교회라 한다. 글자 그대로 세계에 자랑하는 교회이다. 거기에다 한국교회 신도들은 헌금을 많이 낸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십일조 헌금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십일조 헌금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열심이다. 그래서 대형교회가 되면 연간 예산이 수백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그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문제이다. 말라기서에서 십일조 헌금을 내는 신도들에게 약속하시는 복이 나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장 10절)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온전한 십일조”란 말이다. 온전한 십일조가 되려면 십일조 헌금을 낼 때도 온전하게 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쓸 때도 온전하게 써야 한다.

 

그래야 십일조 헌금을 낸 성도들이 약속하신 복을 받게 된다. 그렇게 제대로 쓴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이고 좋은 교회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교인들이 드릴 때는 온전하게 드렸는데 교회에서 쓸 때는 온전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온전한 십일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온전한 십일조 사용은 어떤 내용일까? 신명기 14장에서 한 기준을 일러준다.

 

“....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명기 14장 28~29절)

 

이 말씀에서 십일조를 사용하는 용도를 셋으로 일러준다.

첫째는 레위인들의 생활비 즉 교회 전임 일꾼들의 생활비이다.

둘째는 나그네들에 대한 배려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탈북자들이나 해외 노동자들을 위한 사용이다.

셋째는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식탁을 마련하는 일이다. 성경에서는 가난한 이웃을 말할 때는 대표로 고아와 과부를 손꼽는다.

십일조 헌금을 이렇게 쓰면 복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한국교회들이 지금부터나마 실천 하여야 할 사항이 아니겠는가!

 

(2013-08-07/13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