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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서희의 거란과의 협상사례를 통해 본 협상전략 소개

Smart Lee 2008. 2. 16. 14:05

이 책은 지난 날 한국 사회가 국제적, 국내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들로 큰 갈등을 겪고 있던 시기에 우리 역사속에서 뛰어난 협상가인 서희의 협상전략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 협상용 참고서로서 시기를 초월하여 좋은 책이라 생각되기에 필자의 블로그에서 한 번 소개하여 보기로 한다.

  

Main Idea

 

만약 서희가 살아있다면?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한일어업협상 이래 우리의 국제 협상은 늘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왔다.  지난 날 수많은 국제협상에서 보여 준 우리의 협상 모습은 정말 슬프고 안타깝기만 했다.

국제협상 뿐이 아니다. 국내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 역시 우리의 협상 문화가 어떤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중략)...  서글픈 우리의 협상모습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이러한 실망의 한편으로 '서희'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말로써 나라를 구하고 강동 6주의 넓은 영토까지 획득한 고려의 재상 서희.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러한 현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사회적 갈등과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를 굵직한 국제협상에서 우리의 협상가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그러한 국제협상에서 국민의 의견은 어떻게 수렴되고 활용되어야 할 것인지를 서희의 입을 통해 알아본다. 더불어 일상에서 수없이 부딪치게 되는 협상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내기 위해 어떠한 능력과 노하우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본다
.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나
2002
년 겨울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제안서라는 이름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서희와 그 협상에 대한 책 집필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서희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바쁘다는 것이 행운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그 바쁜 시간의 틈 사이에 나는 간신히 서희의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읽는 시간과 시간의 여백에 2003년 한 해에 터진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협상과 관련된 사건들 사이에서 나는 서희를 읽고 있었던 셈이고, 서희와 한국의 협상 경험들이 한 흐름으로 가슴과 머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독자에게 미안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이 책은 허리끈을 풀고 느슨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 아니다. 한국사회를 서희와 협상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위해서 조금 정공법을 쓰고 싶었고, 또 그런 의도를 독자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1. 서희, 거란과 협상을 하다

 

오늘날, 협상은 하나의 시대적 화두다.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 협상을 비롯하여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조정과 협상, 심지어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까지, 협상은 모든 문제에 걸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리 협상을 못하는가? 전부 아니면 전무로 치닫기 일쑤인 노사협상, 의약분업 갈등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갈등 조정 능력의 부재, 일본과 러시아와의 어업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미숙함, 쌀시장 개방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 우리의 협상 능력은 이것밖에 안 되는가? 그래서 그 대상으로 선택한, 아니 떠오른 인물이 '서희(徐熙)'이다. 서희와 서희의 업적을 이해하고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부끄러운 지금의 모습이 결코 우리의 참모습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협상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까? 협상을 잘하면 상점에서 물건값을 조금 깎을 수 있고, 연봉협상에서 자신의 월급을 조금 올릴 수도 있고, 크게 보면 외국과의 통상협상을 통해 쌀시장 개방의 속도와 폭을 어느 정도 줄일 수도 있다. 그런 정도에 불과할까? 우리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사람의 탁월한 협상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고, 수백만 국민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보호하였고, 평양 이남으로 국한될 뻔했던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대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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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93,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다. 거란의 소손녕은 말한다. "80만의 군사가 도착하였다. 만일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고려의 군인들은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거란의 역사에서도 80만 명이 정벌 전쟁에 참여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 군대의 질적 수준은 파지하고라도 일단 80만이라는 숫자는 매우 위협적이다. 한갓 야만족일진데 그 숫자야 무슨 상관이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당시의 거란은 송()을 압도하는 강대국이었다
.
거란으로부터 항복을 요구받은 고려, 어떻게 대처했을까? 당시 고려 조정(성종 재위시)은 거란의 침입에 혼비백산하였고 고위 관리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거의 할지론으로 국론이 결정되려는 때에 서희가 강력히 반론을 제기하였고, 이지백 역시 이런 서희의 견해에 동조하였다. 우선, 거란이 '' 고려를 침입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대응해야 하며, 만약 항복해야 한다면 '한 판 싸워 보고 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표면적으로만 사건을 볼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근본 의도를 읽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 뒤 성종은 말한다. "누가 거란 진영으로 가서 언변으로 적병을 물리치고 만세에 남을 공을 세우겠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에 서희가 나선다
.

이리하여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서희와 소손녕의 강화협상이 시작된다. 7일 간에 걸친 강화협상에서 소손녕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당신의 나라는 옛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나라 소속인데 당신들이 침식하였다. 또 우리나라와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는 까닭에 이번 정벌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외형적으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 이유는 첫째, 거란 땅인 고구려 옛 땅을 고려가 침식하였다. 둘째, 고려가 송나라를 섬기고 있다는 이 두 가지였다. 이런 두 가지 침략 이유에 대해
서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

"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이다. 그러므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평양을 국도로 정하였다. 그리고 경계를 가지고 말한다면 귀국의 동경이 우리 국토 안에 들어와야 한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중간을 점거하고 있으며, 그들은 완악하고 간사스러워 육로로 가는 것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도 왕래하기가 더 곤란하다. 그러니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 탓이다. 만일 여진을 몰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거기에 성과 보루를 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장군이 만약 나의 의견을 귀국의 임금에게 전달한다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실로 논리 정연한 반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주장이 거란 왕에게 받아들여져 소손녕은 서희와 '강화협정'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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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희와 소손녕의 3차 협상 】

① 예비 협상 : 상견례 과정에서 신경전 - 상견례 과정에서 신경전은 일종의 외교절차에 관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소손녕은 서희가 뜰 아래에서 절할 것을 요구하였고, 서희는 나라의 크기를 불문하고 같은 대신끼리는 그럴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서희로서는 예비협상이라 할 수 있는 상견례에서 밀릴 경우 본 협상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희가 선택한 전략은 '화를 내며 숙소로 돌아와서 누워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침묵 혹은 무반응 작전 은 일종의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take it or leave it)' 전략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입장은 이러하니 받아들이려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② 본 협상 : 침략 이유를 둘러싼 공방전 - 침략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정작,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손녕이 말한 거란의 고려 침략 이유가 진정한 침략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소손녕의 말대로 '(고려가) 백성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거란이) 하늘을 대신해 벌을 주러' 침략했을 리는 없다. 게다가 '누가 고구려의 후예인가'하는 것도 침략의 진정한 이유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침략의 진짜 이유에 가까운 것은 소손녕이 마지막에 말한 '거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왜 송과 교통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비가 아니다.
거란으로서는 고려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두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송과의 일전(一戰)을 위해서는 후방의 후환이 될 수 있는 고려를 자기편으로 두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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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손녕이 엉뚱한 침략 이유를 댈 때 서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엉터리 이유를 대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협상은 상호 대화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물 흐르듯 논지를 펼치는 것이 가장 좋다. 소손녕이 어떠한 침략의 이유를 대건, 그 침략 이유의 칼을 들이밀면 칼을 이야기하고, 총을 들이밀면 총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주장과 논리를 이용하여 자기의 주장과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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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후속 협상 1 : 연회참석 여부를 둘러싼 공방전
- 본 협상이 끝난 뒤 소손녕은 위로연을 베풀어 서희에게 참여하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희는 '고려가 전쟁 중'임을 이유로 참석 권유를 뿌리친다. 일반적인 국가 간의 교섭에서는 본 협상이 끝난 뒤 협상타결을 축하하는 조그마한 의식을 치른다. 이 연회도 그러한 성격으로 이해 될 수 있다. 하지만
서희는 마지막까지 협상과 관련된 긴장을 풀지 않고 '고려의 왕과 신하가 전쟁 중인데 어찌 나 혼자 즐길 수 있느냐'는 태도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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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협상의 과정에서 서희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뛰어난 특징은 바로 '융통성' 이다. 서희의 융통성은 거듭되는 소손녕의 연회 참석 요청을 받아들이는 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후속 협상과정에서 상대방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두면 나중에 있을지 모를 재협상이나 협상의 이행과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서희가 이것을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못이기는 척 소손녕의 연회참석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협상 상대방과의 관계 형성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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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후속 협상 2 : 실패를 부를 뻔한 조급증 - 서희가 소손녕과의 협상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을 떼, 고려 성종은 박양유를 거란으로 보내어 서둘러 국교를 회복하려 하였다. 전쟁을 하지 않고 협상으로 국가의 위기를 넘긴 성종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협상과정에서 비추어 볼 때 성종의 이 같은 태도는 다소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칫 잘못할 경우 서희가 쌓아올린 실적을 무너뜨릴 위험도 있었다. 협상이 타결되었을 뿐 아직 그 결과는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서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제가 소손녕과 약속하기를 여진을 소탕하고 옛 땅을 회복한 뒤에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겨우 강 이쪽 땅을 회복했을 뿐이니, 강 저편의 땅까지 회수될 때를 기다려서 국교를 정상화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러나 성종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끝내 사신을 보낸다. "
오랫동안 왕래가 없으면 또 무슨 후환이라도 생길까 염려되어 파송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 사신의 파송에도 불구하고 서희가 타결한 협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협상결과에 변화가 생겼다면 그 가장 큰 이유로 성종의 때이른 사절 파견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가건 개인이건 자신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고, 상대방이나 상대 국가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가는 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종의 때이른 사신 파견을 반대한 서희의 협상 감각은 높이 살만하다.

 

2. 서희, 한국의 협상을 말하다.

 

나의 후손들에게 - 서희의 편지
죽은 지 천 년 뒤 조국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비록 혼령의 상태로지만, 나로서는 심히 감회가 깊은 일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가슴벅찬 일이다. 하지만 근 1년 동안 한국 사회를 둘러본 내 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태조께서 삼국통일을 이루어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고 내가 목숨을 걸고 협상하여 압록강까지 넓혔던 조국의 영토가 역사의 질곡을 거쳐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혼령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원통할 만큼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천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아무 진보도 없었단 말인가?

그 동안 나의 마음을 정말로 무겁게 했던 것은 그나마 발전했다고 하는 남쪽의 한국 사회가 참으로 시끄럽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반도를 통일시킬 능력은 남쪽에 있는 것 같은데, 그 남쪽마저 내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나는 나서고 싶지 않다. 천 년 뒤의 세상을 내가 어찌 이해하며, 어떻게 후손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말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한 끝에, 현재 한국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모든 사건들이 직·간접적으로 협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협상의 측면에서 이 늙은이가 후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한국사회를 바꾸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협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해 말할 것이다. 협상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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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손녕과 겨룬 7일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분석될 줄은 몰랐다. 천 년 뒤 학문의 잣대로 보니 그게 협상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고 영토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보면 소손녕에게 받을 것은 제대로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나의 후손들에게 말한다. "후손들이여, 협상을 제대로 하라." 이 말은 현재 국가 간의 협상에 나서는 한국의 관리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자네들의 잘못 때문만이 겠는가. 한국 사회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면 자네들이 어떻게 잘할 수 있겠나. 천 년 전과 달리 이제는 안에서 하는 협상(내부협상)이 제대로 되어야 자네들이 능력을 발휘하는데, 안에서 하는 협상이 도무지 제대로 돼먹지 못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고려 때는 없던 그 국회인가 뭔가 하는 단체는 도무지 협상을 도와주는 것 같지 않다. 외려 발목만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신문과 방송은 또 어떤가? 고려 때는 이런 기관들이 없었으니 옛날 사람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마는 서투른 내 눈으로 보기에도 이들은 딴짓만 하고 있는 것 같다. 협상가를 제대로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각종 이익 단체들도 문제가 있다. 관리들에 대한 책임 전가에만 급급할 뿐, 이들 모두 자신들의 행위 자체가 내부적으로 하는 협상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아하, 이러니 내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내부 협상
민주화라는 것은 의사 표시에 관한 한, 아무런 제재나 감시의 염려 없이 사회 각계각층이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마음대로 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의견 표출이 가능하다는 것은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주요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의사결정과정)이 지극히 다원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의사결정이 다원화되지 못할 경우, 파병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청와대만을 상대로 하면 된다. 청와대를 상대로 파병을 설득하고, 청와대의 동의만 받아내면 국민의 반대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민주화되지 못했던 과거의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여러 번 경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원화된 사회에 있어서는 미국이 청와대를 설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반대가 심하다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파병을 결정할 수 없다. 만약, 그런 반대를 무릎 쓰고 파병을 결정할 경우 한국은 이것을 핑계로 미국에 대하여 '파병에 상당한 실익'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부가 내부 협상의 과정을 통해 외부협상에서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3. 서희가 되기를 꿈꾸다.


누가 서희가 될 것인가
서희가 소손녕과의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요인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대표되는 내부협상, '서희와 소손녕의 협상'으로 대표되는 외부협상에 있었다. 그래서 서희가 협상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당시 고려사회의 자주적 분위기 속에서, 서희 자신이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두 가지 요인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소손녕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서희의 협상가적 덕목 - 시대에 대한 소명 의식
협상은 매우 다양하다. 작은 일상사에서부터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담판에 이르기까지 세상만사 80% 이상이 협상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서희가 협상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한 것은 일상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고려라는 한 국가의 흥망이 걸린 일에서였다. 서희가 활동하던 당시 고려가 직면했던 시대적 소망은 대내적 중앙집권제의 정비, 대외적 자주성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희는 이 시대적 소명에 충실히 부응했다. 광종대의 과거를 거쳐 관리로 입신하고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의 경험을 통해 고려가 처한 대내외적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소손녕과의 협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는 국제화의 시대이며, 남북화해를 통해 통일을 기다리는 시대이며,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는 시대이다. 어떤 직장인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나 일본어까지도 습득해야 하게 되었다. 따라서 무엇을 목표로 하건 어떠한 수준의 협상가기 되기를 원하건 시대의 흐름이나 시대의 소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약 될 수밖에 없다. 고려전기 전기(前期)는 서희처럼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시대적 흐름과 소명을 알 수 있었고 또 그 흐름에 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서희 이상으로 시대적 흐름과 소명을 알고 그것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서희를 뛰어넘는 협상가가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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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을 잘하기 위한 기본 덕목
협상을 제대로 하기위해서는 먼저 협상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협상을 하는지, 협박을 하는지, 하소연을 하는지, 협상을 하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협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훌륭한 협상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다.

여기서 말하는 "
협상"은 협상에 참여하는 양 당사자(혹은 당사자들)가 협상의 타결에 대한 서로의 기대를 일치시켜 가는 과정이고, "협상력"이란 상대방의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협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협상에는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하며, 그래서 협상의 본질이 상호의존성이라는 것을 이미 설명하였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기 전에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고, 그것까지 고려하여 행동과 태도를 선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은 좋은 협상가가 되기 위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적 사고란 자신만의 일방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자기 행동이 가져올 결과나 영향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을 말한다. 바둑이나 체스와 같은 경기에서 상대방의 수를 읽는 것, 기업가가 미래의 경영환경을 예측하고 거기에 맞추어 투자전략을 세우는 것, 학생이 현재보다는 미래의 사회적 수요를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전공을 정하는 것등이 전략적 사고 에 해당된다. 이렇게 본다면 전략적 사고는 좋은 협상가가 되기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지적인 경기, 사업, 인생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한 조건도 된다
.

에필로그 :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서희와 같은 훌륭한 협상가가 되려는 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또 그런 인물이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설명하였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다. 이 결론은 3 1장에서 부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만고고금의 진리이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
서희와 같은 훌륭한 협상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으로 훌륭한 협상가가 되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앞에서는 '인물'로 이야기했다. 왜 사람인가? 사람과 동물이 구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기를 버릴 줄 알기 때문이다. 동물적 본능에서 지배되지 않고, 욕심을 버릴 줄 알며, 자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과 이 사회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과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과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는 결단. 그런 능력을 기를 생각이 없다면 서희와 같은 협상가는 꿈꾸지 않는 것이 좋다.

 

저자소개

김기홍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그 뒤 동 대학원에서 노동경제학과 경제발전론을 공부하였고, 미국의 UCSD(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응용게임이론과 정보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문적 이력인 역사와 경제발전, 그리고 게임이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인간과 그 행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그의 연구 분야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게임이론을 응용하여 국제기구와 국제통상협상을 연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보경제학의 차원에서 e-business와 디지털경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분야는 '정보를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 디지털경제실장을 거쳐 현재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협상학회 이사, 한국국제통상학회의 이사 겸 학술지 편집위원, 국제 e-비즈니스 학회 이사 등의 학회활동에도 열심이다. 이와 함께 산업 자원부,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국회에서의 자문활동 등을 통해 학문적 이론을 현실에 접합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의 시론을 오랫동안 집필해 왔으며,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을 거쳐 현재는 부산일보에 경제칼럼을 쓰고 있다.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GATT, 우루과이라운드, 그리고 한국』등의 저서가 있다. '인간의 행위를 조금 짧게 보면 경제행위가 되지만, 조금 길게 보면 역사가 된다.' 성경과 도덕경을 끔찍이 아끼는 그의 지론이다.

 

(2005-06-10 자료출처 : 네오넷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