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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소수의 힘

Smart Lee 2008. 3. 15. 18:21

 

 

 
                                창조적인 소수의 힘

민주주의 시대가 되고 대중화 시대를 살면서 다수에 대한 숭배가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 정치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사회 전반에서 다수를 숭상하는 기운이 높다. 심지어 한 사람의 영혼을 대하는 교회에서조차 많은 수에 관한 인식은 거의 절대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거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다수는 다수 이전에 창조적인 소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야꾸시즈 타이조 교수가 쓴 테크노헤게모니』(Technohegemony)란 책이 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은 간단명료하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이끄는 국가가 있는데 그 국가는 기술의 주도권을 가진 국가이다. 영국16세기에 접어들며 산업혁명을 먼저 일으키게 된 것은 그 당시의 기술력을 선점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독일이 강대국이 된 것도 화학공업과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당시의 첨단기술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지적하는 주목할만한 점은 이런 나라들이 세계 제일의 기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배경을 종교개혁 직후에 등장케된 개신교 신자들의 “창조정신”과 “개척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당시에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하였던 인사들이 당시로서는 가장 깬 사람들이었고 창조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들은 또한 개척정신과 모험정신, 합리성과 과학정신을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한국의 장래이다. 무턱대고 다수에 매달릴 것이 아니다. 다수 이전에 먼저 창조적인 소수자들이 있어야 한다. 창조적인 소수가 다수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혼을 깨우쳐 줄 때 그 다수가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08-03-14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창조적 소수' 관련 좋은 글       

 

 정보화시대에는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될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화시대의 권력과 금력 대신에 지식과 정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남보다 많이 아는 자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남보다 많이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공부 밖에 없다. 남을 이끄는 계급에 속하고 싶은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계급에 속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창조적 행동”의 저자인 심리학자 아서 쾨스틀러창조적 역량을 지닌 사람들은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 모든 정열을 거기에 쏟아 붓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이기 보다는 남보다 열정을 가지고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창조의 순간은 전심전력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겪은 힘겨운 과정은 보지 않고 그 결과만을 가지고 그들을 천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보다  수 백배 더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숲속을 지나면서도 땔감을 발견하지 못하는 법이다.

 

공부할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장애는 인내심의 부족이다. 공부하겠다는 결심이 오래가지 못한다.(작심삼일) 무엇이든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지속적인 인내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다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다. 최선을 다 했는데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도전하기 앞서 미리 패배를 인정하고 합리화할 변명을 먼저 만들어 낸다. 이번 시험에는 공부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출제되었다든지, 갑자기 감기가 걸렸다든지 하는 따위의 구실을 만들어 자신의 패배와 실수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마음가짐이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두자.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외세포의 10%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친다고 한다. 나머지 99%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백지 상태로 남아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꼴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노력 여하에 따라 몇 배로 신장될 수 있다. 자기의 두뇌를 남보다 1% 라도 더 활용하는 사람은 늘 선두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선두의 자리는 자기가 가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우수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믿음을 갖는다면 실제로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욱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기를 사용하면 자기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자기능력의 120%를 발휘할 수 있다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80% 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이처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개인의 심리상태는 두뇌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머리가 뛰어 나더라도 부정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은 결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반면에 평범한 두뇌를 가졌어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뛰어난 성적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은 아이큐(I.Q 지능지수) 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큐 + 이큐 (E.Q 감성지수) 의 합계로 정해진다고 한다. 한편 사회생활에서는 지능지수 보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때 감성지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긍정적인 사고라고 한다.

 

긍정적인 자기 암시는 공부를 비롯한 모든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좌절하거나 포기를 하지 않는다. 곤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자기 암시가 가슴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특히 공부와 같은 두뇌활동에서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무한한 에너지가 숨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얼마나 많이 꺼내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 결정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여야 한다.

 

위대한 창조의 발견은 고독한 시간에 형성된다. 인간에게 고독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아마 인류는 지금처럼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독한 시간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고독한 시간이야 말로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듯 정신적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지나면 인간의 뇌세포는 서서히 줄어든다. 어떤 두뇌학자는 인간은 청소년기를 지나면 더 이상 창의력에 의한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 든 후에 공부를 하려면 젊은이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토인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진보와 발전의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들은 군중이 아니라 “창조적 소수”라고 말했다. 창조적 소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대중의 자리를 이끌어 내어 새로운 역사를 펼쳐 간다고 했다.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는 창조적 소수는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반드시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의 문명은 지속 될 수 있다. 또한 그 들을 전 세대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당신 자신이 바로 창조적 소수이다.

 

인간은 고민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다. 질문하는 행위는 곧 의미를 찾는 노력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축척된 것을 우리는 학문이라고 부르고 그 학문에 대하여 알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공부라고 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문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인간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더 한층 노력하게 된다. 인간은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삶의 가치는 행복을 달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과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다. , 공부하는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 고독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나 그 속에는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 보람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해 왔다. 그에 따라 문화가 발전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진리는 고정된 자리에 있지 않고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멀리 달아난다. 그러므로 인간은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지식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체계적인 인식과 판단이다. 이런 점에서 객관적 보편타당성을 강조하는 서양의 학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혜는 사물의 본질을 바르게 파악하고 바르게 처리하는 고차원적인 사리판단력이다. 다시 말해서 지혜는 지식을 바르게 쓸 줄 하는 슬기이다. 이렇게 지혜는 인간의 실천적 지식이요 행동에 관한 분별력이다. 그래서 지식이 많은 사람을 학자(學者)라하고 지혜가 많은 사람을 현인(賢人) 이라고 부른다. 학자가 되기는 쉬워도 현인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어떤 나라를 알고 싶을 때

과거를 알고 싶으면 박물관을 찾아 가보고

현재를 알고 싶으면 시장을 찾아 가보고

미래를 알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자세를 살피라고 했다.

 

이동재: '힘들지만 공부해야 하는 이유 30가지(2005.3.25 큰나출판)' 중에서 

 

(자료출처: 해도람의 따뜻한 세상 http://blog.empas.com/serkha/10377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