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사상성있는 교회

Smart Lee 2008. 5. 17. 16:09
 
                         사상성 있는 교회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한국교회는 자랑스러운 교회이다. 우리들이 자신들의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기듯이 우리들이 속한 교회 역시 그렇게 여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한국교회의 뜨거운 신앙과 충성스러운 봉사에 비하여 사상성이 부족한 점이다. 물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지 사상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기초가 확실치 못한 채로 사상성을 강조하게 되면 세상 이데올로기에 빠져들기 쉽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상에 대하여 그 중요함을 따라 말하자면 당연히 믿음이 먼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믿음에 사상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자칫 미신에 빠져들기 쉽다. 그리고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력을 잃게 된다. 사상성이 빈약한 믿음은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선도력(先導力)을 잃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 땅에서의 오랜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하여 나가던 때에 40년 동안 광야를 행진하였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그 시절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을 인도하였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회도 사상의 구름기둥으로 비전의 불기둥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두레교회와 두레공동체 운동은 사상성을 강조한다. 두레운동과 두레사상은 다음의 일곱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
 

세계교회들이 다 그러하였지만 한국교회도 지난 120여년간의 역사 중에서 신앙이해에 대하여 두 가지 흐름이 있어왔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란 두 흐름이다. 개인구원이란 개개인들의 영혼구원에 집중하여 사회정의의 실현이나 바른 역사의 구현에는 외면하는 신앙이다. 한국교회들 중에 보수주의로 자처하는 교회들이나 교단들 중에서 그러하였다.
두 번째의 사회구원이란 신앙생활이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를 구원하고 바른 역사를 실현하여 나가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는 신앙이다.

듣기로는 불교에서도 이런 두 가지 흐름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견제하며 극복하여 나오기는 마찬가지라 한다. 불교의 경우는 개인구원에 해당하는 경우를 소승불교(小乘佛敎)라 일컫고 사회구원에 해당하는 경우를 대승불교(大乘佛敎)라 일컫는다. 동남아시아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강하고 동북아시아의 불교는 대승불교가 강하다. 특히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승불교의 전통이 강하였다. 신라시대의 호국불교(護國佛敎)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정답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어느 쪽일까? 성경이 말해주는 정답은 “이쪽이다” “저쪽이다”가 아니다.

성경의 정답은 개인구원의 기초 위에 사회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신앙이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의 미가서 6장 8절과 신약성경의 야고보서 1장 27절의 말씀이 그 대표적인 해답이다.

“사람아 주께서 그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너에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장8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야고보서 1장 27절)  

 

                                      - 삼위일체 신앙 (1) -

두레교회와 두레공동체 운동이 일관되게 내세워 온 주장 중의 하나가 삼위일체 신앙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신앙을 여러 가지로 적용하여 이해한다.

첫째는 우리들의 신앙고백의 기본이 되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삼위로 한 분 하나님이 되시는 삼위일체 신앙이다.

둘째는 신앙과 생활과 산업이 하나로 묶어지는 삼위일체 신앙이다.

 
이점이 중요한 것은 우리들 주위에는 신앙은 좋은듯한데 생활은 크리스천답지 못한 분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전체 교회에 좋지 않은 역할을 하는 신도들도 있고 목사들도 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생활 역시 좋아야 한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신앙이 살아 있는 ‘생활신앙’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이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하여져야 한다. 성경적인 바탕에서 건전한 산업이 뒤따라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 안에서의 신앙과 산업현장에서의 신앙이 균형 잡히지를 못하고 있다. 열심 있는 교인인데 산업을 경영함에는 성경적인 기준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에는 신앙과 생활과 산업이 성경적인 기준에서 균형잡힌 내용이어야 한다.

세번째 삼위일체 신앙은 자녀양육에 있어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삼위일체로 되어져야 한다.

 

이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이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을 살펴보면 심각한 현실이다. 크리스천 가정들의 자녀들이 가정에서의 신앙생활과 학교생활과 교회에서의 생활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두레교회와 두레공동체 운동에서는 어떻게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나가게 할 것인지에 고민하고 헌신하여 왔다.  

 

                                         - 삼위일체 신앙 (2) -

위에서 두레교회가 생각하는 삼위일체 신앙의 3 가지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와 신앙, 생활 산업의 삼위일체 그리고 가정, 학교, 교회의 삼위일체 신앙을 소개하였다

 

네번째로 교회, 겨레, 산업의 삼위일체 신앙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들 크리스천들이 성경에 바탕을 둔 복음적인 신앙과 역사의식을 아우르는 바른 신앙을 실현하여 나가기 위해서는 이땅에서 교회의 역사와 겨레의 역사가 일치하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교회가 세워져 지나온 120여년 역사에서 적어도 전반부에는 교회사와 민족사가 일치를 이루는 시기였다. 교회사가 시작되어질 무렵부터 한국교회는 겨레의 근대화와 항일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이후로는 민주화와 시민의식 향상에 전심전력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의 일꾼들이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들이었다. 우선 쉽게 떠오르는 대로 손꼽아 보자 서재필 박사, 도산 안창호 선생, 백범 김구 선생, 월남 이상재 장로, 남강 이승훈 선생, 남궁억 선생, 김교신 선생, 조만식 장로, 이승만 박사 등등으로 기라성 같은 민족진영의 지도자들이 크리스천이었다.

지금에 와서 한국교회의 모습에 탄식스러운 점은 한국교회가 위의 선배들과 같은 민족과 사회의 걸출한 지도자들을 길러내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기껏해야 교회 안에서의 지도자들이지 국민 전체에 신뢰를 받고 민족의 나갈 길은 바르게 제시하는 경륜과 비전을 갖춘 지도자들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이점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부끄럽게 여기고 철저한 반성과 다짐이 있어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08-05-13/16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