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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길을 묻다

Smart Lee 2008. 5. 23. 17:45

 

이스라엘에 길을 묻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 기술경영 의사결정론 강좌에 초청된 윤종록 KT 부사장은 이스라엘의 성장동력 얘기를 했다. 1970년대 이스라엘의 성장동력은 해수 담수화 기술이었고, 80년대원자력 안전 기술, 90년대에는 IT기술, 그리고 2000년대에는 IT사회가 될수록 결국은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시큐리티(보안) 기술로 성장동력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 부사장은 이스라엘은 해수 담수화 기술로 지금도 기술료를 거두어들이고 있고, 원자력 안전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90년대 이스라엘 IT업체들은 미국나스닥에 대거 상장될 정도로 실리콘밸리의 기술 풍향계를 좌우했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보안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그는 이동통신 단말기의 세계 강자인 노키아도 차세대 성장곡선으로 보안을 말하고 있다면서 앞서가는 이들은 뭔가 확실히 다르더라는 얘기를 했다. KT에서 성장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윤 부사장으로서는 이런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성장동력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이 나왔다. 여기서 차세대라는 말은 김대중 정부 때의 성장동력과 차별화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차세대 대신 신성장동력을 내걸었다.


명칭만 보면 그게 그것 같아 보였는지 특히 융합을 통한 신성장동력을 이명박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표적 성장동력인 IT의 발전전략도 수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당시 삼성전자 출신의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이른바 ‘IT839’전략을 들고 나왔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대체하는 ‘뉴IT전략’을 만든다는 것이다. IT는 과연 앞으로도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한국을 방문했었다. 약 6시간 정도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것 말고 그가 한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30여분간 연설하면서 제2의 디지털 르네상스가 온다면서 PC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이른바 텔레매틱스 협력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빌 게이츠가 했던 두 번째 일에서 이명박 정부의 뉴IT 전략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IT와 다른 산업간 융합을 통한 신성장 추구가 그것이다.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IT가 그동안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해 온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비IT 부문으로 얼마나 파급되어 갔는지, 그 결과 국가 전체적으로 총요소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등을 따져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실증적 분석들이 적지 않고, 이는 IT와 기존 산업과의 융합을 지지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IT와 타산업의 융합이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빌 게이츠의 제2의 디지털 르네상스 얘기였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IT는 그 자체로도 성장동력을 창출할 여지가 아직도 많이 있다는 뜻 이다. 한국의 IT 역시 내부적으로 아직 성장동력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사실 우리의 IT 산업구조는 너무나 불균형적이다. 인프라와 콘텐츠의 불균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불균형, 완제품과 부품·소재의 불균형, 정보화와 보안의 불균형 등이 그 단적인 증거들이다. 그러나 이런 불균형들은 긍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콘텐츠, 소프트웨어, 부품·소재, 보안 등은 실제로 IT를 이끌어갈 새 성장 축들이다. 우리는 지금 이 부분의 성장 축들이 대단히 취약하고, 이 때문에 기존의 IT 성장 축들마저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각해 보면 IT가 보다 균형 잡힌 구조라면 IT와 타산업과의 융합 효과도 그만큼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성장 축으로 옮겨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이를 리드해 나갈 창의적인 새로운 인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기존 성장 축과 새로운 성장 축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기존의 성장 축은 어떻게 보면 자원배분 측면에서 기득권 세력이고, 이 기득권 세력이 쉽사리 양보할 리 없다. 정부도, 기업도 과거의 성공신화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새 성장 축을 떠받쳐줄 법과 제도, 문화의 혁신도 필요하다. 콘텐츠가 발전하려면 공정한 경쟁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건설업의 하도급 공사쯤으로 여기거나 일자리 창출용으로 삼는 후진적 발상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부품·소재는 인내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정보화는 곳곳으로 확대하려 하면서 보안에 대한 지출은 가급적 최소화하려 들고 이로 인해 오히려 정보화를 취약하게 만드는 모순 또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해 보면 성장의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다. 성장의 조건을 못 만들기 때문에 성장을 못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10년마다 새로운 성장의 곡선을 만들어 내는지 그 조건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2008/05/21 안현실,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