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삼농(三農)

Smart Lee 2009. 9. 17. 11:12

                                                

                         

 

                                                                                                                                                                                                                                                                       

                                삼농(三農) ①

예부터 농사꾼을 세 부류로 구분하여 하농(下農) 중농(中農) 상농(上農)이라 했다. 하농이란 농사를 짓되 게을러 알곡 농사보다 잡초 농사를 짓는 일군을 일컫는다. 중농이란 부지런하여 논과 밭에서 잡초를 제하고 알곡 농사를 알차게 짓는 농사꾼을 말하고, 상농이란 곡식을 가꾸기 전에 먼저 농사의 근본이 되는 땅을 기름지게 가꾸는 농사꾼을 일컫는다.
 
옛날 농촌마을에서는 어느 집안과 혼사를 맺을 때에 상대 집안이 경작하는 논밭을 먼저 둘러보고 혼사를 결정하곤 하였다. 그 집안이 가꾸는 논밭에 잡초가 그득하면 그 집은 하농 집안이라 여겨 혼사를 맺지 않았다. 하농 집안에 딸을 시집 보냈다가는 얻어 먹으러 다닐 처지가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농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농가는 물론 상농이다. 상농인 농가는 가을걷이가 끝나면서부터 다음 해 농사 준비를 시작한다. 이랑을 깊이 갈고 두엄을 넉넉히 넣는다.  다른 농사꾼들은 농한기(農閑期)라 하여 화투놀이나 윷놀이에 몰두하는 동안 상농 집안은 논밭의 땅심을 북돋워 주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그렇게 땅이 잘 가꾸어 지게 되면 다음 해의 농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생만사는 서로 통하게 되어서 농사에 통하는 원리가 정치에도 기업경영에도 학문에도 그리고 심지어 신앙생활에도 두루 통하는 원리임을 알게 된다

                                                                                                                
                        
                

 

                                    삼농(三農) ②

- 삼농 삼학 삼정 (三農 三學 三政) -

농사에 하농, 중농, 상농이 있듯이 학문에도 하학, 중학, 상학이 있다. 말하자면 하학(下學)이란 학문을 익히되 자기 자신의 공명을 얻기에만 급급하여 사회에는 해를 끼치는 학문이라 할 것이다. 중학(中學)이란 기껏해야 자기 한 몸을 다스리기에 족한 학문일 것이다. 그러나 상학(上學)이란 자신의 학문이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는 학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이 나라의 학문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상학은 드물고 중학이 많은데다 개중에는 하학하는 이들이 득세하는 모습이 눈에 뜨이는 것 같아 자못 염려스러운 바가 깊다. 그러기에 학문하는 풍토에 하학을 없이하고 상학을 높여나가는 길이 시대적인 과제라 여겨진다. 이점에서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농사에 삼농이 있고 학문에 삼학이 있듯이 정치에도 삼정(三政)이 있다.
 
정치가들이 자기 한 몸이나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이익추구에 머물게 될 때에 그 사람들이 연출하는 정치는 국민들에게 공해(公害)를 일으키는 하정(下政)이 된다. 정치가들이 자기 몫을 챙기기에 머물고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지 못할 때에 그 정치는 중정(中政)이 된다. 이에 비하여 정치가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에 앞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앞세우고 겨레의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면 그런 정치가들이 이끌어 가는 정치는 상정(上政)이 된다.
 
이 나라의 정치가 하정은 물론 중정의 수준에서 벗어나 진정한 상정의 정치로 나아가게 되기를 마음을 모아 기도 드린다.

 

 

                                     삼농(三農) ③

 

 

삼농, 삼학, 삼정에 대한 비유는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의 세계, 종교에서도 세 부류가 있다. 하신(下信), 중신(中信), 상신(上信)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삼신(三信)이다. 하신이란 사이비 신앙, 사이비 종교를 일컫는다.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영혼을 좀 먹는 사이비 신앙은 생각외로 흔하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공해(公害)가 있지만 신앙공해가 가장 해악을 끼친다. 화학공해나 농약공해 같은 공해들은 사람의 육신만 해치지만 신앙공해는 영혼까지 무너뜨리기에 치명적인 공해가 된다.
 
중신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되 자신의 병 낫기를 구하거나 자신이 복 받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이른바 치병기복의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상신은 안심입명(安心立命)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종교의 기본이 되는 신앙의 양면을 균형 있게 갖춘 신앙생활을 일컫는다. 안심입명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개인구원이라 할 수 있겠고 경세제민은 사회구원 혹은 역사구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신앙의 경지는 이 양자를 함께 갖춘 신앙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함께 이루어 가는 신앙이다. 한국교회는 이 양자를 균형 있게 갖추지를 못하고 한 편으로 치우쳐 온 감이 깊다. 한 편에서는 보수신앙이란 이름으로 개인구원에 머물러 왔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진보신앙이란 이름으로 사회구원에 치우쳐 왔다. 그래서 양 편이 모두 절름발이 신앙으로 지나온 감이 있다. 요즘 들어 이 양면을 함께 이루어 나가야겠다는 균형 잡힌 신앙을 찾는 흐름이 일어나고 있어 몹시 바람직스런 현상이라 여겨진다.

 

 

(09-09-16/18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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