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매년 광복절을 전후해 ‘뜨거운 여름’을 맞는다. 두 나라의 극단주의자들이 사건을 연출해 긴장과 마찰의 수위를 높이는 연례행사를 벌이곤 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연초 독도 교과서에서 불이 붙은 양국 간 감정싸움은 정치인들의 분쟁지역 방문으로 극대화되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도쿄대를 졸업하고 고려대로 유학온 뒤 1986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 2003년 한국에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55·保坂祐二) 세종대 교양학부(일본학) 교수를 만났다. 그는 ‘독도종합연구소장’이란 직함을 함께 갖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세종대 새날관 3층에 있는 연구실을 찾아갔을 때 다른 언론사도 취재를 위해 대기 중이었다.―왜 독도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島根)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제정해 당시 한·일 사이에 심한 외교마찰을 불러왔던 일 기억나십니까? 그때 일본에 가서 독도가 표기돼 있지 않은 일본지도를 많이 찾아내 한달 만인 4월 ‘일본 고(古)지도에도 독도 없다’는 책을 펴냈습니다. 시마네현의 옛 지도, 오래된 일본 전도 등에 독도는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독도에 대한 일본영토 의식이 1905년 이후에 비로소 생겨났다는 점을 증명했죠. 이것이 계기가 돼 2009년 5월 독도종합연구소를 세우고, 같은 해 9월 ‘우리 역사 독도’란 책을 썼습니다. 19세기까지 한일관계에서의 독도 문제를 다룬 내용이지요. 2010년 9월 속편 격인 ‘대한민국 독도’를 발간해 근대 이후 지금까지의 독도 논쟁을 정리했습니다.”
그가 독도 전문가로 성장한 배경을 이해하자마자 곧장 핵심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의 대답은 일관성과 조리가 있었고, 명쾌했다. 과연 전문가다웠다.
―최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울릉도를 방문한다며 입국을 시도했습니다. 무슨 배경이 있나요? 점점 높아가는 한·일 갈등 수위는 위험선으로 치달을까요?
“올해 3월31일 중학교 역사·지리·공민 3과목의 사회과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공민과 지리 12종의 모든 교재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4종은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과격한 표현까지 담고 있습니다. 내년 4월부터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 모든 일본 중학생들이 이 같은 내용을 배우게 됩니다. 시마네현에서 발간한 부교재는 채택하는 학교도 있고, 채택하지 않는 학교도 있겠지만 상당히 상세하게 일본의 주장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한국측 주장을 강도높게 비판한 내용입니다. 이 교과서 문제가 현재 독도 갈등의 뿌리입니다.”
―교과서 문제라… 그럼 2001년 일본 극우파들로 구성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서 주도한 역사교과서 발간과 같은 맥락인가요?
“6종의 역사 교과서는 독도 문제를 싣지 않았습니다. 역사교과서에서 왜 독도를 언급하지 않았느냐면 역사적으로 고찰할 경우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교과서 중 독도 관련 기술을 한 것은 새역모 관련 출판사가 펴낸 1종 뿐입니다.”
호사카 교수의 설명을 듣다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인들은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이웃 일본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성금을 걷고 여러가지 지원을 했는데, 그 와중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 발표를 하다니 하면서 상당히 흥분했었다. 특히 일본내 야당으로 몰락한 자민당 일부에서 한국의 지원을 받지 말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더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와, 한국민들이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라며 분개하기도 했다.
교과서 문제로 격발된 감정싸움이 고조되기 시작한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호사카 교수는 사실 한국이 빌미를 제공한, 조금 실속없는 행위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곳저곳 인터뷰나 토론장에서 똑같은 주장을 했는데 잘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더라고 살짝 비판조로 말했다.
“올 5월에 한국의 독도특위 소속 야당 국회의원 3명이 러시아와 일본 간 분쟁지역인 쿠릴 열도의 쿠나시리섬에 러시아 영토를 경유해 들어갔습니다. 이는 러시아측 영유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한국 의원들은 ‘분쟁영토 시찰’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당연히 일본을 자극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2010년 10월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쿠나시리섬을 방문해 일본 정부가 매우 예민해있던 시점이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내부적으로 방문하지 말라고 반대의사를 전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한국 정부에 입국을 말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도발로 인식했습니다. 7월에 한국 입국을 시도했던 3명의 자민당 의원들도 한국 국회의원들의 쿠나시리섬 입도를 언급한 바 있어요. 신도 의원은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
대한항공이 독도 상공을 통과했다. 8월에는 한국 독도특위 위원회가 독도에서 열린다. 이대로 가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이 강화된다.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한국 측에서 구실을 제공한 거지요”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인접 3개국 모두와 영토분쟁을 벌이는 중이다. 러시아(쿠릴 열도·일본명 북방 4도), 중국(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한국(독도·일본명 다케시마)과 동시다발로 외교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 내에는 이를 다루는 ‘영토에 관한 특명위원회’가 있을 정도다.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이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최근의 울릉도 입국 도발도 이를 위한 정해진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사법재판소 건은요, 일본 국회에서 한 의원이 ‘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질의하자 마쓰모토(松本) 외상이 ‘다케시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하고 있다’고 답변한 것을 산케이가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시인했다고 해석, 보도한 겁니다. 마치 일본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한 것처럼 알려진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에도 시마네현 지사가 일본 정부에 대고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달라’고 요청한 뒤 정부가 ‘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이번 외상의 발언 역시 다분히 일본
국민을 향한 내국용 발언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 국제사법재판소 독도 재판은 안 열리겠네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양국 국교정상화를 타결지으면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공문을 교환했어요. 양국이 같은 내용을 1부씩 갖고 있죠. 여기에 ‘조약을 맺었음에도 분쟁이 일어나면 외교상 루트로 해결하자, 안되면 제3국을 세워 조정하자’고 합의문을 적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란 선택지는 빠져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는지는 상당한 논의가 따라야 하는 문제입니다. 한일기본조약의 파기로 연결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약은 조정을 하기 전에 양국이 합의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죠. 1965년 조약 체결 당시에도 한국은 독도를 실효지배하면서 고유영토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어요. 이런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으면서도 기본조약을 체결했다는 건 일본이 사실상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 국회는 정부를 몹시 비난했습니다. 이런 비난에 대해 사토(佐藤) 당시 수상은 제대로 대꾸를 못했어요. 독도를 포기한 상태에서 그냥 조약이란 문서의 모양새만 갖춘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가장 타당합니다. 또 하나 더.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하더라도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재판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일본이 제소 전략을 채택할 순 있겠지요. 그럴 경우 한일관계는 다시한번 엄청 악화될 겁니다.”
―곧 광복절이 됩니다. 최근 한·일간의 냉각된 분위기를 반영, 이명박 대통령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필요 이상의 말로 일본을 자극하게 되면 일본에서도
국가원수인 총리 차원의 강력한 표현이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냥 보통 수준의 말로 독도 문제를 언급하고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다. 이에 대해 온 국민이 신념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큰 메시지를 던져주면 됩니다. 비방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요. 이 정도로 하는 게 한국에도 좋지 않을까요?”
―호사카
교수님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친 ‘경계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난 고국 일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일본은 상당히 이성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익이 관련되면 이성을 일부러 멈춥니다. ‘나라를 위해 더 이상 나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독도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있는 증거도 왜곡하고 은폐합니다. 일본인들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았잖아요? 이성적이고 우수하기 때문에 왜곡할 수 있는 겁니다. 머리가 좋지 않다면 ‘숨겨야 한다’는 인식도 못하겠죠. 그래서 객관성이 덜한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왜곡·은폐하려 하는 거예요. 이 차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시아의 리더, 세계 국가의 일원으로 활동하려면 진실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독도는 일본 땅이고, 위안부는 없었고,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 해방 전쟁이었다? 사람도 잘못을 저지르는데 국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일본은 스스로 이성을 속이고 있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진실 편에 서면 조금은 손해를 보지만 그것이 참된 승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상태로라면 세계 곳곳에서 마찰을 빚는 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원래 일본 사람이고, 지금은 한국 사람입니다. 학자로서 한국과 일본, 양쪽을 넘어 진실 편에 서야 합니다. 한국 쪽에도 문제가 있으면 서슴없이 지적합니다. 나의 정체성, 존재의의는 이런 데 있는 거죠.”
(2011-08-13 문화일보 노성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