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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타계… 세계서 애도의 물결

Smart Lee 2011. 10. 6. 23:01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타계… 세계서 애도의 물결

`스티브잡스(Steve Jobs), 1955 - 2011'

전 세계 IT시장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끈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6일 오전(한국시간) 타계했다.

`맥킨토시', `아이팟', `아이폰' 개발 등 시간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전 세계인들에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잡스의 죽음에 세계가 애도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애플 이사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고인의 영명함과 열정, 에너지가 멈추지 않는 혁신의 원천이 됐으며 덕분에 우리의 인생은 풍부해지고 향상됐다"면서 "덕분에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고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올해 56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 잡스는 지난 2004년 췌장암 선고를 받은 이후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애플의 강력한 CEO로 활동하다, 지난 8월 대표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잡스는 지난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한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이후, 개인용 PC인 애플2를 시작으로 매킨토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들을 내 놓으며, 일약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특히 지난 2007년, 잡스가 야심작으로 선보인 아이폰은 당시 인터넷 진영을 호령하던 MS-구글, 휴대폰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노키아-삼성 등 경쟁자들을 뛰어넘어 애플을 단숨에 세계 최대 IT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실제 지난 8월에는 애플의 시가총액이 한때 세계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 세계 IT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아이폰은 과거 유선상에서나 가능했던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동영상 등을 손안의 휴대폰에서 가능한 시대를 만들며 세계 휴대폰 시장을 점령했다. 특히 잡스는 3만 여개가 넘는 애플리케이션을 아이폰으로 제공하며,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바일 생태계를 구현한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잡스의 타계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따랐던 추종자는 물론이고 그와 칼을 겨눴던 경쟁자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나섰다.

평소 잡스와 날선 말싸움을 연출했던 MS 창립자 빌 게이츠는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은 정말로 대단한 영광(insanely great honor)이었다"고 고인을 애도했고,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내놓으며 애플과 대결을 벌이고 있는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도 "항상 사용자의 경험을 강조한 그는 나에게 영감이 됐다"면서 아쉬워했다. 특히 구글은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포털 메인화면 하단에 `Steve Jobs, 1955 - 2011'을 게재하고 가는 그를 기렸다.

최근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도 공식 조의문을 내고 "평소 존경했던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고인은 세계 IT산업에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끈 천재적 기업가였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잡스의 영면으로, 그동안 세계 IT 시장을 주름잡았던 애플의 위상은 기세가 한풀 꺾일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8월 취임한 팀 쿡 CEO 체재가 채 정비되기도 전에 잡스가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애플에 큰 치명타가 될 것이란 평가다.

실제,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유작이 된 아이폰4S에 대한 평가가 비관적으로 흐르고 있고, 삼성전자 등 경쟁자들과의 특허분쟁에서도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로 반전되는 양상이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삼성전자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아이폰4S 판매금지 특허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2011-10-06 디지털타임스 최경섭 기자)

 

27년간 혁신 또 혁신…세상을 바꾼 'IT 혁명가'

 


< 8뉴스 >

< 앵커 >

메모판 같은 바탕화면, 또 자판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마우스. 세계 PC산업은 잡스가 27년 전에 내놓은 이 맥킨토시의 사용자 환경을 아직도 숭배하고 있습니다. IT 업계에서 27년은 영원이나 마찬가지죠. 그 기간 동안 잡스는 세상을 여러 번 바꿨습니다.

김수형 기자입니다.

< 기자 >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연상시키는 암울한 미래, 군인들에게 쫓기던 여성이 스크린을 향해 망치를 힘껏 던집니다.

(1984년)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당신은 왜 1984년이 조지오웰의 1984와 다른지 알게 될 겁니다.

지난 1984년, 잡스는 마술사처럼 매킨토시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매킨토시입니다. 바깥으로 나오니까 좋네요.]

프로그램을 몰라도 마우스만 움직여 컴퓨터의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다는 건 당시로써는 혁명 그 자체였습니다.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복귀한 1998년, 잡스는 또 하나의 회심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아이맥이었습니다.

[자 한바퀴 더 돌려서 촬영해주세요. 어떻게 생겼나 보게요.]

그리고 2007년,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혁신적인 제품 아이폰을 내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애플은 휴대전화를 재창조합니다.]

개발자와 수익을 나누는 새로운 모델을 도입해 개발자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정지훈/관동대 IT융합연구소 교수 : 아이폰 이후의 스마트폰은 뭘로 봐야 되야 하느냐는 이게 이통사가 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기능을 마음대로 수행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일을 시키는 걸로 바뀐거죠.]

잡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파에 앉아서도 컴퓨터의 다양한 기능을 즐길 수 있는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세상에 내놓은 겁니다.

[2011년은 분명히 아이패드 2의 해가 될 것입니다.]

IT 기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스티브 잡스는 분명, IT 분야의 거인이었습니다.

(영상취재 : 김흥기, 영상편집 : 김형석)

(2011-10-06  SBS 김수형)

 

스티브 잡스 누구인가?

[앵커멘트]

스티브 잡스는 파산지경에 이른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IT기업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롤러코스터와 같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IT업계의 신화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김잔디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잡스는 1955년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직후 곧바로 입양됐습니다.

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6달만에 중퇴했습니다.

1976년 컴퓨터 천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했습니다.

이듬해 개인용 PC인 애플 2를 내놓으며 PC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1985년 자신이 영입한 CEO 존 스컬리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 그래픽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성공했습니다.

이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애플로 복귀해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성공시켰습니다.

[녹취:스티브 잡스 (3월 3일 연설)]
"매우 새로운 디자인입니다. 처리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 게 첫째 변화입니다. A5로 불리는 새로운 칩을 달았습니다."

특히 1977년 애플컴퓨터Ⅱ로 PC시대를 열어젖힌 후 30여년 만에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내놓음으로써 PC시대를 접고 포스트PC를 주도해 세계 역사를 스스로 개척했습니다.

잡스는 그러나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치열한 긴 투병생활을 했으나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잡스는 올해 초 병가를 낸 데 이어 지난 8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까지 물러났습니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한 워즈니악과 애플의 경쟁사인 구글의 CEO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는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 시대 최고의 CEO'라고 칭송했습니다.

YTN 김잔디입니다.

(2011-10-06 YTN)

 

미혼모 아들… 차고에서 창업… IT의 전설이 되다

[굿바이! 잡스] 스티브 잡스는 누구인가… 파란만장했던 일대기
초등학교때부터 사고뭉치, 가난 때문에 대학도 중퇴
77년 애플2로 PC 대중화… 85년 회사서 쫓겨났으나 97년 왕의 귀환 승승장구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전세계 IT 업계의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5일 56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선 애플의 성장사만큼 파란만장했다.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몇 주 만에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 입양됐다. 위스콘신대 대학원 학생이던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조앤 심슨이 낳아준 부모였지만, 그는 사생아 딱지를 안고 세상에 나왔다. 후에 결국 결혼했지만, 당시 심슨의 부모는 잔달리가 시리아 출신이란 점을 들어 반대한 때문이다. 심슨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잡스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저했으나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잡스 부부의 약속을 받은 뒤 입양을 허락했다.

학창시절 잡스는 '사고뭉치'였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자주 빼 먹는 비행 어린이였다"며 "담임 교사가 돈과 사탕으로 구슬리는 것으로 겨우 학교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고교 졸업 후 명문 리드대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중퇴했다. 그는 훗날 "부모가 비싼 학비를 내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당시 5센트를 벌기 위해 콜라병을 모으고, 불교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11.3㎞를 걸어갈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다. 78년 고교시절부터 동거하던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 사이에 딸 리사를 낳았지만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10년 뒤 친자 확인 소송 끝에 딸로 받아들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생부와 닮았다는 뒷말은 이 때 나왔다.

그의 신화는 76년 애플을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4월 1일 그는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캘리포니아 로스알토스에 있는 양부모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차렸다. "일생에 한 번, 회사를 차려 보는 거야"라는 후배 스티브(스티브 잡스)의 말에 감동한 선배 스티브(스티브 워즈니악)는 의기투합했다. 둘은 이듬해 개인용 컴퓨터(PC) 애플2를 내놓으며 PC 대중화를 이끌었다. 82년 20대 거부로 시사주간 타임지 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승승장구한 잡스는 85년에는 매출 부진을 이유로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굴욕은 잡스 신화의 서막이었다. 97년 13년 만에 CEO로 귀환한 그는 숨이 넘어가던 애플을 살리기 위해 "연봉으로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던 애플은 그의 복귀 한해 만에 4억달러 흑자로 반전했고, 아이팟(2001), 아이폰(2007), 아이패드(2010) 등 IT 업계의 신화가 줄줄이 탄생했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2009년 간 이식 수술까지 받는 투병생활에 시달렸다. 그러나 병마도 그의 창조성의 갈증을 가로막지 못했다. "죽음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도구"라며 혁신을 계속했다.

잡스의 삶은 끝났다. 그러나 애플은 홈페이지에 "스티브의 정신은 애플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며 불멸의 신화를 칭송했다.

(2011-10-06 한국일보 이성기 기자) 

 

스티브 잡스 연설 화제 "죽음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 연설 화제 "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 ⓒ 애플 공식홈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립자 사망소식이 전해진 5일(현지시각) 지난 2005년 잡스의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당시 15분간의 짧은 연설에서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사진 = 스티브 잡스 ⓒ 애플 공식홈]

 

이어 그는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며 "타인의 기대, 자부심, 좌절, 실패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며 "죽음은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여러분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자기 삶을 허비하지 말라"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결과에 맞춰야한다는 도그마에 빠지면 안된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내면의 소리를 잃지 말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어 "용기를 갖고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라" 또 "늘 갈망하고 바보짓을 두려워 말라"고 덧붙였다.

[2011-10-06 엑스포츠뉴스=방송연예팀 강정석 기자]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네번째 사과'


PC·아이폰 개발로 IT지형 재편
인문학·기술 융합학문시대 앞당겨
자산 8조원 아내·4자녀 배분될듯


2011년 10월 5일(미국 현지시간) 사망한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4번째 사과'였다.

최근 인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화가 폴 세잔의 사과에 이어 애플의 로고인 '한입 베어먹은 모양의 사과'를 네 번째 사과로 추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만큼 잡스와 애플이 세계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개인 컴퓨터 대중화

잡스는 1975년 최초의 소형 컴퓨터 '키트'가 등장하자 이를 완제품 개인용 컴퓨터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5세 연상의 천재 공학도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해 1976년 애플컴퓨터를 창업, 애플Ⅰ을 출시한 데 이어 이듬해 개인용 완제품 컴퓨터 '애플Ⅱ'를 내놓는다. 애플Ⅱ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50%를 휩쓴다.

잡스는 이어 1984년 그래픽 사용자환경을 적용하고 마우스를 도입한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놓는다. 매킨토시는 컴퓨터 사용환경에 일대 혁신을 불러온 제품으로 평가 받는다.

▲포스트PC 시대 열어

잡스는 PC시대의 개척자이자 파괴자였다. 애플이 2007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휴대전화 산업 지형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또한 2010년 초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 포스트 PC시대의 본격 출발을 알렸다. PC는 결국 태블릿 PC에 밀려 올해 들어 급격하게 성장률이 축소되면서 급기야 세계 최대 PC메이커인 휴렛-패커드(HP)가 PC사업부 매각을 전제로 전격 분사하기에 이르렀다.

▲융합학문시대 앞당겨

잡스는 지난해 애플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애플은 단순히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 아니다"면서 "애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인문학에서 가져온 인간성과 기술을 연결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인문학과 연계한 공학을 함께 연구하는 융합학문 시대를 앞당겼다.

▲'연봉 1달러' 14년간 14달러만 받아

애플은 그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도구였다.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난 지 11년만인 1997년 애플로 돌아왔고 이후 지난 8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만 14년간 애플에서는 매년 1달러, 14년간 총 14달러의 연봉만 받았다. 잡스는 다른 CEO들이 탐욕스럽게 챙기는 신주를 비롯한 스톡옵션도 전혀 부여받지 않았다. 아울러 잡스는 1997년 애플로 돌아온 이후 보유하고 있던 550만주의 애플 주식 가운데 단 한 주도 매각하지 않았다.

블룸버그 추산에 따르면 9월 6일 현재 잡스의 순 자산은 적어도 67억달러(한화 약 7조9,328억원) 규모다. 잡스의 재산은 일단 아내인 로렌 파월과 네 명의 자녀에게 우선 배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 잡스의 유언장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향방은 아직 알 수 없다.

잡스가 떠난 후 후계자 팀 쿡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될 애플호가 향후 어떤 진로로 나아갈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1-10-06 스포츠한국 김노형기자)

 

스티브 잡스가 남기고 떠난 '4단계 혁신이론'

< 아이뉴스24 >

[로스앤젤레스=이균성 특파원] 스티브 잡스는 누가 뭐래도 금세기 최고의 '혁신 아이콘'이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가 떠난 자리에서 '포스트 잡스'를 이어갈 사람을 찾아보려 해도 언뜻 떠올릴 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가 주창한 혁신을 그의 어록을 통해 분석해봤다. 어록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의 혁신 이론은 4단계 과정을 핵심으로 삼은 듯하다.

1. 모방하고 훔쳐라

첫 번째 과정은 주변의 것을 배우고 학습하는 '모방' 혹은 '훔침'의 단계다.

 

 

 

 

 

그는 1996년 미국 방송 P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사실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했다.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유명한 격언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결국 혁신과 창의성은 어디 특별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위를 열심히 탐구하고 획득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그는 2000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창의성은 단순히 여러 가지 요소들을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며 "인간의 경험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수록 더욱 훌륭한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이란 제품의 외관에서부터 포장 그리고 서비스라는 여러 단계를 통해 표현되는,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근본적인 영혼"이라고 말했다.

2. 가진 것을 모두 합쳐라

두 번째로 강조되는 게 '통섭(統攝)' 과정이다.

통섭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책 'Consilience'를 국내 최재천 교수가 '통섭(統攝)'으로 번역한 뒤 노무현 정부 때 유행한 말인데 그 '통섭'의 실천자가 바로 잡스였던 것이다.

잡스는 지난 2일 아이패드2를 발표하면서 맺음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플의 기술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는) 인문학과 결합했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복무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고, 이게 제대로 되려면 인문학적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잡스는 이 점에서 폴라로이드를 만든 발명가이자 물리학자, 에드윈 H. 랜드(Edwin H.Land) 박사를 사숙(私淑)했다고 할 수 있다.

잡스는 1999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폴라로이드가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서길 바란다.'는 랜드 박사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을 그토록 강조한 것이다.

3. 다르게 생각해라

이미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을 '모방'하고 '훔침'으로써 세상에 대한 폭넓은 통섭을 바탕으로 변화의 길목에 미리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세 번째다.

잡스는 2007년 맥월드 행사 때 이런 자신의 노력을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영웅인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의 말을 인용해 대신했다. 그레츠키는 "나는 퍽(puck)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으로 스케이트를 타고 간다."라는 말로 잡스에게 영감을 줬다.

애플이 1984년 매킨토시를 만들어냄으로써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게 이를 테면 퍽이 갈 방향이었으며, 2001년에 내놓은 아이팟과 아이튠스, 2007년에 내놓은 아이폰, 2010년에 내놓은 아이패드 등과 같은 제품 또한 퍽이 갈 길목에 미리 내놓은 제품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건 이들 제품 모두 이미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모방'과 '훔침'을 통해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다시 변주됐다는 점이다.

4. 쉽게 단순화 해라

네 번 째 요소는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직감 혹은 직관(intuition)'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통섭이 난해해지면 일반인으로써는 별로 쓸 모가 없어진다.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되 그것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야 한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기술과 사람의 일은 복잡해지게 돼 있다. 이를 섞어서 통찰하면서도 직감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간에서 그 제품을 만들어내는 자의 사명이라는 게 스티브 잡스의 생각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선(禪)에 심취했다는 스티브 잡스는 1998년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다. 생각을 깔끔하고 단순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상품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3분 안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엘리베이터 브리핑(Elevator briefing)'은 스티브 잡스에게는 단순한 마케팅 이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가의 철학으로 생각된다.

 

(2011-10-06 아이뉴스24/로스앤젤레스 이균성 특파원)

 

“다르게 생각하라”…혁신의 아이콘, 세상을 바꿨다

[스티브 잡스 사망] 애플 창업부터 아이폰 개발까지
매킨토시 출시하며 MS·IBM 아성 도전
아이폰·아이패드로 스마트 혁명 이끌어
인문과 기술 접목, IT 새로운 비전 제시

스티브 잡스는 탁월한 기업인이었다. 21살이던 1976년 스티븐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컴퓨터를 창업한 잡스는 애플2와 매킨토시로 개인용컴퓨터(PC) 시대를 열고, 2000년대 들어선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스마트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1997년 당시 파산 직전에 몰렸던 애플은 현재 시장가치 2850억달러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뛰어난 제품으로 높은 매출과 수익을 거두는 것을 넘어, 제품 출시 때마다 전세계 열성팬들로부터 종교적 제의에 버금가는 추앙을 받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고집스러운 이단아였다. 그의 지향점은 남달랐다. 1984년 맥컴퓨터를 선보일 때 내보낸 광고에선 한 여인이 해머를 들고 뛰어가 빅브러더가 지배하는 남성들의 세상을 박살내버린다. 아이비엠(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배하는 기존 질서를 부수겠다는 메시지였다. 피시 시장에서 끝내 엠에스의 지배를 뒤집지는 못했으나,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를 앞세운 포스트피시(Post PC) 전략으로 그의 꿈은 이뤄졌다.

애플의 구호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다. 이 전략이 가장 잘 구현된 제품은 아이폰이었다. 애플은 거대 통신사들이 지배하는 통신 환경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2위 이하 사업자와 손잡은 애플은 이동통신사가 단말기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극소화하고 소비자와 개발자들을 끌어들여 아이폰발 스마트폰 혁명을 이끌었다.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이동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다. 각국의 이통사들이 통신서비스와 단말 공급권을 갖고 가입자와 제조사를 쥐락펴락하던 구조가 아이폰 하나로 무너진 것이다.

잡스는 기계적 아름다움을 지닌 하드웨어를 만들어 팔면서도, 기계보다는 거기에 담아서 즐길 수 있는 가치를 앞세웠다. 아이팟은 음악관리 도구인 아이튠스와 음원 판매 상점인 아이튠스스토어와 결합돼, 디지털시대에 음악을 구매하고 즐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멀티터치를 채택해 손쉬운 조작법의 중요성을 일깨운 아이폰은 앱스토어를 통해 손쉽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구매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내 디지털 환경에서 성공 모델을 확립한 것도 애플을 이끈 잡스의 몫이다. 지난 4일 아이폰4에스(S) 발표 행사에서 애플은 "지난해에만 앱스토어를 통해 17억83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70%를 개발자들에게 돌려줬다"고 밝혔다.

잡스는 깊은 통찰력을 지닌 엔지니어였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기업의 경영자로서 잡스는 여러 차례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며, 기술에 대한 인문적 접근을 강조했다. 잡스는 제품 출시와 관련해 시장조사나 컨설팅 의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벤치마킹 대신 통찰력으로 고집스럽게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고, 나사못 하나마저 줄이는 등 완벽한 디자인을 지향한 제품들에 전세계 사용자는 열광했다.

잡스는 무엇보다도 세상을 바꾼 혁신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컴퓨터의 그래픽 사용자환경(GUI)이나 멀티터치도, 엠피(MP)3와 스마트폰도, 태블릿피시도 사실은 애플이 최초로 만든 게 아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애플 제품을 통해 비로소 대중적 상품이 되었고, 디지털 문명과 스마트 시대를 연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잡스는 이들 혁신적 제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의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그 누구보다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문적 접근을 바탕으로, 기술과 예술이 만나도록 하고 사람이 기술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 셈이다.

미국 조지아공대 전자설계연구소의 임규태 박사는 "잡스는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던 사회에서 인간이 기술을 지배하는 사회로 탈바꿈시켰다"며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제품을 통해 알려줬다"고 말했다.

 

 (2011-10-06 한겨레 구본권 기자)


<그래픽> 스티브 잡스의 10대 제품

 5일(현지시간) 숨진 스티브 잡스는 정규 기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300개의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잡스의 주도로 탄생한 제품 10건을 소개한다.


(2011-10-06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