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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결국 美와 한판 싸움… 한국 외교, 싱가포르처럼 속내 감춰야"

Smart Lee 2012. 11. 18. 16:17

"中, 결국 美와 한판 싸움… 한국 외교, 싱가포르처럼 속내 감춰야"

 '시진핑號 중국'의 앞날… 정재호 서울대 교수
中, 북한 편 계속 든다 - 공유 이념·인간적 유대 없어도 자국 안정, 北에 달렸다고 봐
시진핑, 국민불만 해소 나설것 - 고위직 축재, 빈부격차 없앨 체감 큰 정치개혁 수행이 과제
새 지도부 태자당 영향력 여전 - 중앙위원 80%, 문혁겪은 세대 사회불안엔 원천적으로 반대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는 후진타오(胡錦濤) 시기에 누적된 빈부 격차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들이 고위 관리들에게 갖고 있는 불신을 일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5일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상무위원 발표 때 한 연설에서 '이 자리는 인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리'라며 마치 선출된 대통령처럼 말한 것이 인상적"이라면서 "시진핑 지도부는 보시라이 사건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재산 문제 등을 통해 중국 국민이 중앙정부와 고위 관리들에 대해 갖게 된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시진핑 지도부를 구성하는 상무위원 7인이 발표됐다. 이번 상무위원 구성을 어떻게 보나.

"상무위원의 서열과 직능 구분이 중요하다. 4세대 지도부에서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이어 서열 3위였지만 이번에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위가 됐다. 과거 리펑(李鵬) 총리가 2위였던 시기로 되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열이 다시 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돌아온 것이다. 왕치산(王岐山) 부총리가 당내 기율과 사정을 담당하는 중앙기율검사위(中紀委) 서기가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 위기를 잘 극복했던 왕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듯하며 부패와의 전쟁에서 그 저돌성을 발휘하라는 요구로 보인다."

중국에서 상무위원은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나.

"상무위원들 간의 역학관계는 사실 밖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상무위원들은 각각 담당하는 직능 계통 안에서 최고의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분야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는 것이 규범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국가주석과 군사위 주석을 겸임하며 중국의 당ㆍ정ㆍ군을 총괄한다. 리커창 총리는 집행기관인 국무원을 지휘한다. 우리 정부는 통상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둘을 모두 정상회담 상대로 인정해왔다. 전인대 상무위원장 장더장(張德江)은 헌법상 최고 권력기관인 국회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위정성(兪正聲)은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최고 국정자문기구) 주석에 올랐는데 소위 '태자당(太子黨)' 그룹의 맏형으로 알려져 있다. 서열 5위 류윈산(劉雲山)은 서기처를 총괄하는 역할과 함께 선전 업무를 맡게 됐다."

―이번 지도부의 성향을 분석한다면.

"7인 상무위원은 태자당, 상하이방(上海幇), 공청단파(共靑團派), 간쑤방(甘肅幇), 석유파 등의 복잡한 지분 나누기의 모습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보시라이 사건에도 태자당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5년 후 7인의 상무위원 중 5인이 퇴임할 것을 감안하면 정치국원 25명의 구성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에 상무위원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부총리급 이상의 직위가 예상되는 리위안차오(李源潮·62)와 왕양(汪洋·57), 중앙조직부장 자오러지(趙樂際·55세),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까지 보좌하게 된 '꾀주머니' 왕후닝(王滬寧·56세), 각각 광둥과 충칭 서기 발령이 예상되는 쑨정차이(孫政才·49세), 후춘화(胡春華·49세)가 그들이다. 205명의 중앙위원 전체를 보면 80%가 1950년대 출생이다. 즉, 문화대혁명을 몸으로 겪은 세대로 사회 불안정에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가 중국 5세대 지도부 출범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명원 기자
―지도 그룹의 성향이 어떻게 변하고 있나.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부상이 예상보다 빨라 당황하고 있다. 2050년이나 돼야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던 예상을 뒤엎고 지금은 이르면 2018년에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양적 성장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질적 발전을 해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즉, 테크노크라트가 아니라 비전을 가진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진핑 체제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뭔가.

"우선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 가장 절실하다. 정부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축적된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성장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다양한 격차를 줄여가는 문제, 정경유착이 심각한 대형 국유기업들의 과점체제를 깨는 것, 그리고 말로만의 법치가 아닌 체감되는 정치개혁의 수행일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미ㆍ중 관계는 이전과 달라질까.

"미국과는 협력과 경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진핑 시기의 어느 시점에는 경쟁과 협력으로 그 순서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아시아 복귀(pivot to Asia) 정책을 펴고 중국도 '평화로운 부상을 통한 아시아의 안정'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ㆍ인도 등과 함께 중국을 견제, 대립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고, 중국은 이를 깨기 위한 합종연횡을 도모하는 기싸움이 빈번해질 것이다."

―시진핑 지도부가 센카쿠·남중국해 등 영토 갈등에는 어떻게 대처할까.

"중국이 영토 갈등에 대해 공격적인가 하는 문제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곧 다가올 유엔 해양법 개정 시한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각국이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데다 석유ㆍ셰일가스 등 에너지와 어업 자원 때문에 분쟁적 성격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먼저 도발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도발할 경우 이를 압도적으로 제압한다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경우에도 국유화라는 일본의 도발에 강하게 대응하는 것일 뿐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시진핑 지도부의 생각이 궁금하다.

"중국은 이제 북한과 이념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북한 지도부와 끈끈한 인간적 유대도 없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중국의 큰 경제적 자산도 아니다. 그렇지만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안보는 만주의 확보에 달려 있고 이는 또 한반도의 안정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북한에 대해 지전략적(地戰略的) 이익이 가장 크다는 의미이다. 미ㆍ일 동맹, 한ㆍ미 동맹이 여전히 남아 있고 중국이 향후 미국과의 한판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면 중국은 북한 편을 계속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ㆍ중 간 경쟁과 협력이 복잡하게 얽힐 시진핑 시대에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흔히 미ㆍ중 간 균형 외교를 말하는데 계속 진화하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항상 적절한 균형을 취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국제정치의 '종속변수'다. 우리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무엇이 되겠다고 떠드는 것보다 명민하고 유연함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싱가포르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가 되겠다고 대놓고 선언한 적이 없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 중국과 공히 잘 지내는 나라이다. 바로 싱가포르처럼 조용하지만 유연한 외교가 중요하다."

 

(2012-11-17 조선일보 강인선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