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신앙은 체험이다.

Smart Lee 2013. 11. 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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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체험이다.(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태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누가복음 3장 21, 22절)

 

신앙은 체험이다. 그래서 머리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온 몸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머리로 믿는 신앙은 힘이 없다. 힘이 없으니 아무도 변화시키지를 못한다.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이웃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요즘 들어 교회들이 시들시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는 가슴을 뜨겁게 하고 영혼을 새롭게 하는 체험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70세에 40년 목회를 정년퇴직으로 마친 후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장고(長考)하였다. 장고 끝에 결론을 내리기를 교회를 새롭게, 교인들을 뜨겁게 그리고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일에 헌신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동두천 소요산 기슭에 6만평 골짜기를 구입하여 두레수도원을 열었다.

 

두레수도원이 하고자 하는 일의 첫째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던 때에 체험하셨던 영혼의 체험을 하자는 일이다.

첫째가 하늘이 열리는 체험이다.
둘째가 성령이 임재하시는 체험이다.
셋째가 하늘로서 소리를 듣는 체험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하늘이 열리는 체험"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은 하늘이 닫힌 채로 신앙생활을 하려니 신앙생활 하기가 힘이 들고 예배당에 말이 많다. 그래서 예수를 몇 십 년을 믿고도 지쳐 있는 신도들이 많다. 하늘이 열리는 체험이 없으니 신앙생활이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이 행복하지를 못하다. 얼마나 아쉽고 애석한 일인가?

 

신앙은 체험이다.(2)

 

기독교 신앙생활의 진정한 출발은 하늘이 열리는 체험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늘이 열리는 산 체험 없이는 머리로 믿는 신앙이지, 심령을 뜨겁게 하고 삶을 활기차게 하는 진정한 신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나는 1974년과 75년 2년간에 정치범으로 형살이를 한 적이 있다.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의 경험이다. 정치범 중에 원충연 대령이란 분이 동료 죄수로 있었다. 원대령은 박정희 장군의 공보시장으로 있다가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수로 살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기독교반의 반장으로 있었기에 나와는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분은 같은 죄수 입장이었으면서도 교도소 안의 모든 죄수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부러워 한번은 물었다.

“원 대령님은 같은 죄수면서 어떻게 그렇게 존경을 받는지요. 나는 성직자이지만 교인들로부터 그렇게는 존경받지 못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존경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요?”

이런 나의 물음에 원대령께서 자신이 겪은 영적 체험을 일러 주었다. 바로 "하늘이 열리는 체험"이었다. 자신이 반혁명사건으로 인하여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 고문이 얼마나 가혹하였던지 기절하였다가 깨어나기를 거듭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기절하였다가 깨어난즉 손가락, 발가락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리고 옴 몸이 식어지고 굳어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 죽는 순간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군인으로서 나라 일을 하다 죽게 된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만, 하나님 일하지 못하고 세상 일만 하다 죽는 것을 회개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중에 천정으로부터 밧줄이 내려오더니 ‘이 줄을 잡으라.’는 하나님의 음성 을 들었다. 그 순간 힘이 솟아 선뜻 일어나 줄을 잡았더니 두 번째 음성이 들리기를 ‘다시는 이 줄을 놓지 말지어다.’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옴 몸에 힘이 솟으며 망가진 몸이 회복되어 지금까지 건강히 지내고 있노라며 ‘내가 이런 체험을 하였기에 옥중에서나마 절제하며 베풀며 살아가니 다른 죄수들의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원충연 대령의 이 체험담에 은혜를 받아 나도 그날 밤부터 천정을 쳐다보며 기도를 드리곤 하였다. 그러다 나 자신도 큰 은혜의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그 체험이 지금까지 나의 신앙역정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신앙은 체험이다.(3)

 

1974년과 75년 옥살이를 하던 때이다. 그 시절 중요한 정치범들은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다. 서울구치소에서 내가 수감된 방은 0.7평짜리 좁은 방이었다. 방이 너무 좁아 보건체조를 할 수 없었다. 온종일 그 좁은 방에서 갇혀 있으며 할 일이라곤 성경 읽는 일 밖에 없었다.

 

감옥에서는 성경을 이스라엘 무협지라 부른다. 나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이스라엘 무협지 성경을 열심히 읽기 시작하였다. 월요일 아침나절 창세기 첫머리에서 시작하여 토요일 오후가 되니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엿새 만에 성경일독을 하고 나서 나는 반성하였다. '명색이 목회자가 되어 성경으로 설교를 하면서 엿새면 한 번 읽는 성경을 일 년에 한 번도 안 읽고 설교를 하였구나'하는 반성이었다. 마침 군사재판에서 15년 형을 선고하기에 계산까지 해보았다. 성경을 6일에 한 번씩 읽고 7일째는 안식하며 15년을 읽으면 몇 번이나 읽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그때부터 읽기 시작하여 여섯 번째 읽을 때였다. 그러니 6주가 지난 것이다. 예례미야서를 읽는 중에 갑작스레 성경이 변하였다. 종이에 활자 찍힌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책으로 바뀐 것이다. 살아 있는 나와 살아 있는 성경이 만나게 되었다.

성경 구절구절이 감동으로 내 마음에 다가왔다. 성경 속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성경을 읽었다. 성경이 내 영혼의 거울이 되어 내 영혼의 초라하고 헐벗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 시절 그렇게 감격하며 읽은 성경읽기가 내 영혼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신앙은 체험이다.(4)

 

나는 어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는 3단계의 절차를 거친다.

첫째는 이번에 하려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교회와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인가 아닌가를 묻는다. 어떤 때는 그냥 기도드리며, 생각하며 묻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금식하며 묻기도 한다. 금식하는 경우는 사안이 중요하고 상황이 심각할 경우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와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두 번째 절차에 들어간다.

 

두 번째는 이 일을 굳이 내가 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도록 두어야 하느냐를 묻는다. 좋은 일이라 하여 내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내가 감당하지를 않고 다른 사람이 하도록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제한되어 있음을 나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물음에서 그래도 내가 하여야 할 일이란 결론에 이르게 되면, 세 번째 질문에 들어간다.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보통 일주일 내지 열흘 기간을 거친다.

 

세 번째는 꼭 하여야 할 중요한 일이고 내가 하여야 할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다음질문으로 들어간다.

세 번째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여야 하느냐 아니면 나중으로 미루어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가능하면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구실을 찾아본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시작하여야 할 일이란 결론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시작한다. 사람이 준비되지 않고, 예산이 준비되지 않고, 아무런 노-하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도 그냥 Action으로 들어간다.

72살이 되는 지금까지 그렇게 시작한 일들에 대하여 나는 감사드린다. 더러는 실패에 이른 일들도 있고 더러는 성공적인 일들도 있지만 성공 실패를 불문하고 나는 감사드린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일하여 온 나의 삶에 스스로 감사하고 또 행복스러워 한다. 그런 일들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음을 체험을 통하여 깨닫고 감사드린다.

 

신앙은 체험이다.(5)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무엇을 더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

 

나는 해마다 2월 23일이면 금식을 한다. 74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연중행사이다. 74년 그날 나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중요한 정치범들은 독방에 수감되던 때였던지라 나에게 주어진 방은 불과 0.7평인 좁은 방이었다. 그런데 74년 2월 23일은 2월 달 늦추위가 닥쳐 몹시 추웠다. 추위가 너무 심하니 다리뼈를 칼날로 후벼 파는 듯이 통증이 왔다.

나는 추위를 이겨보려고 선체로 뜀박질을 하다, 기도를 하다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추위는 가시지를 않고 나중엔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때 나에게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성경에서 ‘불’자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고 추위를 이겨보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창세기에서부터 ‘불’자를 찾아나가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찾은 ‘불’자는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80세 나이에 양떼를 돌보고 있을 때에 호랩산 기슭 떨기덤블에 붙은 불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차례로 ‘불’자를 찾아나가다 신약에 이르러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예수께서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서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이 땅에 불 던지러 오신 예수님 제가 지금 너무나 춥습니다. 추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나에게도 불 좀 던져 주셔서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며 그 다음 ‘불’자인 사도행전 2장 첫 부분을 읽을 때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나에게 불로 임하여 온 몸이 훈훈한 기운 속에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신앙은 체험이다.(6)

1974년 2월 23일 내가 서울구치소 0.7평짜리 좁은 방에서 성령의 불을 체험한 날이다. 그 뒤로 나는 해마다 2월 23일이 되면 꼭 금식을 한다. 금식하며 그날에 받은 은혜, 겪은 체험 그리고 읽었던 말씀을 되풀이하곤 한다. 그러노라면 그때 받은 은혜와 감격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래서 그날의 그 체험이 내 삶에 영적 재산으로 남아있다.

 

서대문구치소에서 정치범들이 수감된 방에는 햇빛조차 들지 않는 방이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하다 잡혀왔던 지사들이 수감되었던 방이었다. 벽에는 빛이 바랜 피로 쓴 글자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방에서 너무나 추워 나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때 불 체험을 하고는 감격에 너며 울면서 네 방 모퉁이를 돌며 절을 하였다. 나의 주인 예수께서 그 방에 불로 임하여 계심을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취침나팔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 나는 다시 한 번 감격하였다. 74년 1월 17일에 성직자들이 유신헌법반대 시위를 주도하였던 일로 수감됐었던 나는 밤마다 9시경이 되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와서 남산 중턱에 있는 정보부 지하실로 데려갔다. 밤 새 한잠도 재우지를 않고 조사를 하곤 했다.

 

"김진홍 너 평양 언제 갔다 왔어?"

이런 식으로 묻곤 하였다. 나는 당황하여 "보소 내가 대구 사람이 평양 길을 알아야 가지요"하고 답하면 "야 인마! 넌 하는 짓이 평양가서 밀봉교육 받고 온 놈이 틀림없어"하며 다그친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는 새벽녘에 구치소로 다시 데려다 준다.

오는 길에 잠이 쏟아져 졸면서 걷게 되니 신발 속에 눈이 들어가 양말이 흠뻑 젖었다. 방에 들어가 양말을 벗고 발을 말리고 잠들어야 동상에 걸리지를 않는데 그냥 쓰러져 잠이 들고 만다. 그러는 사이 발이 얼어 동상이 심하여졌다.

 

그런데 2월 23일 성령의 불을 받게 된 날 밤에는 동상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 밤에 나는 다시 감격에 넘쳐 밤중임에도 찬송을 소리높이 불렀다. 그때의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신앙은 체험이기에 체험해 본 사람만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신앙은 체험이다.(7)

 

나는 설교자이다. 나이 30세 되던 해에 청계천 빈민촌에서 개척교회를 세워 설교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42년째 설교하고 있다. 지금은 나이 72세이지만 지금도 설교하고 있고 앞으로도 설교할 것이다. 지금의 내 생각으로는 80세가 될 때까지 설교할 작정이다. 아니 그 나이까지 설교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나는 설교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 내가 설교자라는 사실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나는 설교할 할 때에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따라 설교를 준비하고 행한다.

첫째가 나는 내가 체험하고 실천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응답 받은 내용으로 설교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집을 읽지 않는다. 나 자신의 생각과 체험과 고민과 응답 받은 내용을 설교하기 위하여서이다. 설교자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이나 자신의 체험이나 자신이 응답 받은 내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교하는 설교자들이 있다. 그런 설교자들은 듣는 이들의 가슴에 닿는 설교를 하기 어렵다.

 

둘째는 쉽게 설교한다.

설교는 쉬워야 한다. 노인으로부터 어린이들까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설교할 수 있는 지름길은 설교하는 내용을 자신이 먼저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자신이 미처 모르는 것을 설교하면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내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 역시 어려워지게 된다. 특히 기독교 복음 자체가 어렵지 않다. 아주 쉽고 간결하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쉽게 믿을 수 있는 내용이 복음이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께서 친히 이르신 구절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신앙은 체험이다.(8)

 

나는 설교자로서 설교를 준비하여 행할 때에 여섯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내가 체험하고 고민하고 기도하여 응답 받은 데로 설교한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쉽게 한다는 원칙이다. 내가 사역을 시작한 때는 1971년 30세 나이 때이다. 청계천 빈민촌에서 판잣집 한 채를 구입하여 방구들을 들어내고는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사과 궤짝 둘을 포개 놓은 채로 강단을 삼아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처음 6개월 정도는 설교시간이 몹시 힘들었다. 설교시간만 되면 빈민촌 교인들이 조는 것이었다. 설교시간에 교인들이 졸고 있으니 설교자인 내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6개월 정도는 그냥 참고 설교를 하다가 6개월 쯤 지나 친분을 쌓은 뒤에 하루는 교인들을 나무랐다.

“여러분 예배당이 여관방인줄 아는 거예요. 왜 예배당에만 오면 자는 거예요? 헌금 조금 낸 것을 여관비 낸 것으로 아는 거예요 뭐에요?”하고 나무랐더니 앞자리에 앉아 졸고 있던 한 할머니가 잠결에 그 말을 알아듣고는 내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하였다.

"하이고 젊은 사람이 딱하시오. 우리가 잔다고 나무라는 것 같은데, 재우면서 잔다고 나무라면 어떡하오?"

나는 할머니의 그 말에 말하기를 "할머니 그게 뭔 말이에요. 내가 재운다니? 자장가를 부른 거예요? 왜 재운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대답하기를 "재우는기 아니라구요? 도대체 뭔 소린지도 모르는 말을 혼자 말하면서 재우는기 아니고 뭐에요! 도대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여야지, 자기 혼자만 아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재우는기 아니고 뭐에요?"

 

나는 할머니의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과에서 조교로 한동안 근무하다 예수님을 만나고는 신학교로 들어갔다. 그런데 빈민촌으로 들어가 빈민들 앞에서 설교하면서도 마치 철학 강의하는 듯이 설교를 한 것이다. 빈민촌 주민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껌팔이, 리어카 장사, 단무지 장사, 넝마주이 이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칸트, 하이데거 이런 이름들을 들먹이며 설교를 하였으니 그들이 조는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그날 밤에 곰곰이 생각한 끝에 설교내용과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기로 하였다. 빈민촌 주민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의 눈높이에서 쉽게 쉽게 설교하기로 하였다. 그 후로 나의 설교는 쉬운 설교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신앙은 체험이다.(9)

 

설교를 준비하여 마치는 전 과정을 설교학에서는 Inventory라 한다. 나는 설교를 인벤토리할 때에 여섯 가지 원칙이 있다. 이들 여섯 가지 원칙에 따라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도 인도하고 강연도 한다. 첫째와 둘째는 지난 글에서 이미 언급한 바대로 내가 체험하고 고민하여 응답 받은 바를 설교하는 것이 첫째이고 쉽게 설교하는 것이 둘째이다.

 

셋째는 즐겁게, 기쁘게 설교하는 원칙이다.

먼저 설교하는 내가 즐겁고 기뻐야 듣는 교인들도 즐겁고 기뻐진다. 그래서 나는 42년째 설교하고 있지만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즐겁다. 나는 설교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신명난다. 그래서 앞으로도 10년은 더 설교할 수 있는 건강과 기회를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다.

“행복하기”로 말하자면 나의 신앙관이 그러하다. 나의 신앙관은 단순하다.

"예수 믿어 행복하여지자"

이것이 나의 신앙관이고 목회관이다. 예수를 믿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 천국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행복한 천국에 가기 위하여 지금은 불행하게 살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천국의 행복을 누리려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대학시절에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시절 한 때는 "삶은 비극이다"는 생각에 빠져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자살론을 들고 다니며 자살 하겠다고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 모으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2년 후인 1968년 12월 4일 밤 신약성경의 에베소서를 읽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 몸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날의 감격과 기쁨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진리의 주인 되신 예수를 만난 기쁨을 삶으로 살겠노라고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되어 설교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보람되고 행복한 나날을 살았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신앙은 체험이다.(10)

 

설교하는 과정 전체를 설교학에서는 Inventory라 한다. 나의 경우는 6가지 원칙에 따라 설교를 Inventory한다. 앞의 글에서 3가지 원칙을 소개하였다. 4번째 원칙은 "깊이 있게"이다. 신앙의 세계는 깊이의 세계이다. 우리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세계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약점 중의 하나가 "깊이의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깊이의 차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먼저 목회자들 자신이 깊이의 세계가 부족한 데서 연유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영성이 왜 깊지를 못한가? 신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그러하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는 훈련과정부터 영적 깊이를 더하여 가는 훈련과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러하지를 못하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가슴 뜨거운 사명감을 품고 들어가지만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가슴 속에 뜨거운 사명감은 시들어지고 졸업할 때는 사늘하게 식은 가슴으로 졸업장을 받아 나온다. 그래서 신학교 총장을 일컫기를 ‘소방수(消防手)’라 부른다. 신학도 들의 불을 끄는 사람이란 뜻에서다.

 

그렇다면 신앙적인 깊이를 가꾸어 가는 길은 무엇인가? 4가지 조건이 꾸준히 가꾸어져 가야 한다. '중단 없는 전진'이란 말이 있듯이 다음의 4가지 조건이 중단 없이 이어져 가야 영적인 세계가 깊어진다.

첫째는 깊은 기도생활이다.

둘째는 말씀 묵상이 깊어져야 한다.

셋째는 거룩한 독서(Lexio Divina)가 이어져야 한다.

넷째는 영적인 체험이 넓고 깊어야 한다.

 

신앙은 체험이다.(11)

 

세계사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들이 있다.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이다. 그런 천재들 중에 파스칼이 손꼽힌다.

 

파스칼은 30대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적 체험을 갈구하였다. 그리하여 간절히 간절히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갈구한 끝에 어느 날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케 되었다.

온 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충만하게 느끼며 감격에 넘쳐 자신이 누리는 감격과 기쁨을 글로 적었다.

 

“철학자의 신(神)도 아니요 수학자의 신(神)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셨다. 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은 숨어버리시더니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에 하나님은 나를 품어주셨도다.”

 

파스칼은 이 글을 적어 자신이 입는 겉옷 앞섶에 넣고 바늘로 꿰매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파스칼이 죽은 후에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옷깃에 꿰매진 이 글을 찾게 되었다. 파스칼 같은 천재가 체험한 하나님의 임재체험(臨在體驗)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체험이겠는가!

 

신앙은 체험이다.(12)

 

나는 3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리 같은 사람을 모태신앙(母胎信仰)이라 한다. 어머니 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뜻에서다. 그런데 모태신앙들에게 한 가지 위험이 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니 신앙생활이 습관이 되어 있을 뿐이지 뼛속 깊이 체험하는 신앙으로 자라지 못하는 점이다.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기도도 습관적으로 드리고 그냥 교회문화에 젖어 신앙생활을 하는 점이다.

 

모태신앙인들이 그렇게 교회를 다니다가 대학시절 쯤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어려움에 빠져들게 된다. 그동안 믿던 하나님은 부모님들이 믿던 하나님이지 자기 자신이 삶으로 체득한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믿던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면서 영적 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위기를 심리학에서는 Identity Crisis라 한다. 우리말로 표현하지면 정체성(正體性)의 위기(危機)라 할 수 있겠다. 어려서부터 믿었던 하나님은 아버지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지 자신이 직접 만난 하나님은 아니기에 정체성의 갈등이 일어나면서, 영적 갈등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태신앙인들의 많은 숫자가 대학시절을 지내면서 이런 갈등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가버리게 된다. 그런 중에서도 진지한 고민과 갈등을 거치면서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부모님의 신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게 되면서 교회에 정착하게 되고 평생신앙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나도 그런 위기를 대학시절에 거치면서 정신적 방황을 하였다. 특히 대학시절에 철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심하였다.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 철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불합리하여 미신에 가깝다는 생각에 젖어든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참 하나님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2년 뒤인 때였다.

 

신앙은 체험이다.(13)

 

그날은 1968년 12월 4일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철학과 선배이신 홍응표 선배와 함께 신약성경의 로마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홍선배는 김진홍 후배를 거듭난 크리스천으로 세우는 일에 역사적 사명을 느낀다면서, 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성경공부를 하자고 간곡히 간곡히 요청하였다. 선배의 그런 지극한 정성에 마음이 움직여 여름부터 월요일 저녁마다 만나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먼저 로마서 공부에서 시작하였다. 로마서는 성경 중에서도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써진 내용이어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적합한 내용이었다. 초여름에 시작한 로마서 공부가 가을이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서 로마서를 끝내고 에베소서를 공부하게 되었다.

 

12월 4일 저녁에 에베소서 1장을 함께 읽어나갔다. 그런데 1장 7절을 읽고 지나갔는데 순간적으로 내 영혼에 비치는 빛이 느껴졌다. 그래서 7절을 다시 읽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구절을 두 번째 읽었을 때에 내 영혼에 빛이 비춰졌다. "내가 그간에 그리스도 밖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구나. 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인데, 해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인데 헛되이 그리스도 밖에서, 철학 안에서, 방황 속에서 찾아 헤매었구나"하는 깨우침이 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사건이 다름 아닌 나의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 죄와 허물을 씻어주려는 사건이었구나!”하는 깨우침 또한 내게 임하였다. 이것이 바로 복음(福音)의 골자요 알맹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신앙이로구나 하는 확신이 임하였다.

그 순간 마치 먹구름이 덮였던 하늘에서 구름이 걷혀지고, 밝은 햇살이 비쳐오는 것 같은 환희를 경험하였다. 그날 밤 그 순간이 나의 젊은 날의 방황을 마치고 은총과 확신의 세계로 들어서는 시작이 되었다.

 

신앙은 체험이다.(14)

 

1968년 12월 4일 밤에 에베소서 1장 7절을 읽는 중에 영적 체험을 하게 되어 감격에 넘치게 되었던 사연은 어제 글에서 적은 바이다. 그날 밤의 영적 각성이 나의 삶을 통째로 바뀌게 하였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방황하던 풋내기 철학도에서 확신에 찬 크리스천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존재( New Being )가 되어 새 출발( New Start )하게 되었다.

 

그날 밤으로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의 시절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날 밤 감격에 넘쳐 거듭거듭 부른 찬송이 있다.

찬송가 421장 < 내가 예수 믿고서 >이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담은 가사이다.

 

< 내가 예수 믿고서 >

1)내가 예수 믿고서 죄 사함 받아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가 씻겼네.

(후렴)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2)주님 밝은 빛 되사 어둠 헤치니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주 앞에 온전케 됨은 주의 공로를 의지함일세.

3)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모든 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 맘 항상 주 안에 있겠네.

 

(2013-01-10/26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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