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하나님사랑 겨레사랑

Smart Lee 2013. 11. 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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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사랑 겨레사랑(1)

한국교회는 아세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교회이다. 아세아에서 처음 성공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아세아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교회는 아세아의 복음화와 평화시대를 열어 나가는 일에 책임과 사명을 지닌 교회이다. 한국교회가 오늘의 위치만큼 성장케 된 것은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다. 앞서 간 선배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 땀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첫 국회를 일컬어 제헌의회(制憲議會)라 한다. 제헌의회가 처음 열린 날이 1948년 5월 31일이다. 첫 모임의 첫 순서가 임시의장을 뽑는 순서였다.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분이 이승만 장로였다. 이승만 장로가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자 단상으로 올라 첫 번째 발언한 말이 "동지 여러분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드립시다."하고는 국회의원이면서 목사였던 이윤영 목사께 단상으로 올라와 기도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이윤영 목사께서 단상으로 올라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제헌의회 의원들은 해방 후 첫 국회의원들이었던지라 불제자도 있고 유학자도 있고 사회주의자들도 골고루 있었다. 그런데 이윤영 의원이 기도 드릴 때에 전원이 자발적으로 기립하여 기도에 동참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겠는가! 나는 국회도서관에 가서 첫 국회의 회의록에 적힌 이윤영 목사의 기도문을 옮겨 쓰며 감동하여 눈시울이 뜨거웠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첫 국회의 회의록에 목사의 기도문이 먼저 실려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스런 일인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두 가지 분명한 목표를 품고 그 목표를 실현하려 하였다. 첫째는 이 나라의 국체(國體)를 자유민주주의로 정하고 이를 실현하려 하였다. 그 시절 신생독립국가들의 지도자들은 거의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만큼은 달랐다. 하버드에서 석사를 받고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받은 당대의 최고 지성인답게 앞으로는 자유민주주의라야 함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그때 이승만 박사께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여 고집스레 이를 지키려 하였기에 우리 남한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오늘과 같이 승리할 수 있었다.

 

이승만 박사께서 이루려 하였던 두 번째 목표는 대한민국을 기독교 기반 위에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교회는 이승만 대통령의 그런 뜻을 받아들여 국가경영과 민족경영에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를 못하였다. 일본의 강점하에서 온갖 핍박을 견디며 살아남는 데에 매여 독립국가를 경영할 인재들을 길러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아깝게도 기회를 놓쳤다.

 

하나님사랑 겨레사랑(2)

오늘은 김구선생의 하나님 사랑과 겨레사랑에 대하여 살펴보자. 김구 선생께서는 비록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이승만 박사와 차이점이 있고 견해가 다른 점도 있었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과 겨레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일치한 점에서는 이승만 박사와 다를 바가 없다. 김구 선생은 구한말 일본인을 살해한 죄로 옥살이를 하던 때에 기독교 신앙에 입신하여 평생토록 온갖 풍진 속에서도 그 신앙을 떠나지 않았다.

 

1945년 광복절을 맞은 이래 김구선생께서는 상해임시정부의 주석 자격으로 귀국하셨다. 선생이 사시던 집을 경교장이라 한다. 선생께서는 경교장에 도착하신 다음 날부터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시던 날 새벽까지 하루도 새벽기도회를 거르지 않으셨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기도회를 가진 후에 국사에 임하셨다. 김구 선생께서 1945년 11월 어느 날 대중 앞에서 강연하시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이르셨다.

"동포 여러분 이제 세워질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은 기독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할 것이외다. 새로 세워질 나라에서는 경찰서 열개 짓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짓는 것이 더 중요하외다"

 

‘김구 선생이 정말 그런 발언을 하셨을까?’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김구 선생 전집 중에 이런 연설이 분명히 들어 있다. 한국교회의 목사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너무 서양의 이야기만 듣고 읽고 말하려 들지를 말고, 우리 선배들이 하나님 사랑과 겨레사랑, 예수사랑과 동포사랑을 한 가슴, 한 비전속에 품고 어떻게 고민하고 기도하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교인들에게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사랑의 바탕 위에 민정정기를 깨우치고 민족혼을 길러 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복음에는 국경이 없지만 크리스천들에게는 섬겨야 할 조국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사랑 겨레사랑(3)

 

하나님 사랑과 겨레사랑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준 선배 크리스천 중에 김교신 선생이 있다. 선생은 20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함석헌 선생등과 함께 성서조선 운동을 시작하였다. <성서조선운동>은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자’는 운동이다. 그들은 매주 한 차례씩 성서연구모임을 열고 함께 기도하며, ‘여하히 성서의 진리 위에 자주독립하는 조선을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토론하고 기도하였다.

 

그들은 1927년 5월 <성서조선>이란 제목의 격월간 잡지를 발간하였다. 창간호에서 김교신 선생이 쓴 창간사 중에 다음 같은 구절이 있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기억나는 데로 적어본다.

"나에게는 두 애인이 있다. 하나는 조선이란 애인이요 다른 하나는 성서란 애인이다. 이들 두 애인 중에 하나도 버릴 수 없기에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지었다.... 성서조선아 너는 벽촌에 살고 있는 농민들을 찾아가라. 노동자들을 찾아가라. 100년 뒤일지라도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만나라"

 

그렇게 발간된 성서조선지는 겉모습으로는 참으로 초라한 책이다. 싼 종이에 조잡한 편집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글 속에 담긴 내용을 읽노라면 가슴에 신선함을 느끼고 복음에 대한 사랑과 겨레에 대한 정열을 느끼게 된다.

 

내 서재에는 6권으로 된 성서조선 전집이 꽂혀 있다. 나는 틈틈이 뽑아 읽으며 선배들의 복음에 대한 사랑과 겨레와 동포에 대한 정열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곤 한다.

이런 선배들의 정신과 사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땅히 배우고 익혀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인터넷에, 게임에 빠져들어 몸도 마음도 망가뜨리고 있다. 참으로 한탄스런 일이다. 생각 끝에 두레마을에서는 <숲속창의력학교>란 이름으로 인터넷중독 청소년 치유학교를 세우고 이제 개학을 앞두고 있다. 청소년이 망가진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망가진 청소년들을 회복시키는 일이 교회가 하여야 할 일이요, 온 나라, 온 국민이 하여야 할 일이다.

하나님사랑 겨레사랑(4)

 

하나님 사랑과 겨레사랑을 평생을 두고 실천한 선배 크리스천으로 김교신 선생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제 글에서는 김교신 선생께서 20대 나이에 함석헌 선생등과 함께 성서조선지를 간행하던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은 일본유학을 마친 후에 양정중학에 지리 선생으로 부임하였다. 지리 선생으로 교실에서 강의하시는 동안에 지리과목은 절반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깨우치는 강의를 하였다.

 

당시에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표현하기를 대륙에 붙은 토끼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백두산 쪽이 토기의 머리요 영일만은 토끼의 꼬리요, 제주도는 토끼의 똥이라 하였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를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반도의 형상이 어찌 토끼 모습이냐? 호랑이의 모습이다. 대륙을 앞 다리 둘로 떠받치고 웅비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선생께서는 이를 실제로 그림을 그려 학생들과 지인들에게 돌리곤 하였다. 김교신 선생이 학급 담임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자신의 수첩에 반 학생들의 이름을 적고는 날마다 새벽기도 시간이면 학생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중보기도를 드렸다. 그러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눈높이에 따라 지도하였다.

 

반 학생 중에 손기정이란 학생이 있었다. 손기정군이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아시고는 기정군을 불러 마라톤 선수가 되기를 권하였다.

"기정아 너는 마라톤에 소질이 있으니 마라톤 선수가 되어 조국을 빛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선생은 기정군에게 밥을 사며 권하고 격려하였다. 담임선생의 그런 권면을 듣고 열심을 다해 마라톤을 연습하여 드디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게 되었다. 담임선생의 권면과 중보기도가 위대한 선수를 배출시킨 것이다. 손기정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 파견할 대표선수를 선발하기위해 일본 동경에서 열린 경기에 참여하였을 때다. 경기 중간쯤에 이르러 손선수가 지쳐 쓰려지려 할 순간이 있었다. 손 선수가 쓰러지려고 비틀 거릴 때에 자전거를 타고 전 코스를 뒤따르던 김교신 담임선생이 자전거를 탄 채로 목이 매여 소리를 질렀다.

"기정아! 기정아! 조국을 생각해라, 하나님을 생각해라! 기정아 힘을 내라"

담임선생의 이 외침을 듣는 순간 손 선수는 “그래 달리다 죽자”라는 각오로 힘을 다해 달렸다. 지금 이 나라에 그런 교사가 얼마나 필요한 시대인가!

 

하나님사랑 겨레사랑(5)

 

양정중학교에서 지리과목을 가르치던 교사 김교신은 지리시간에 지리는 절반 가르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깨우치는 강의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일본경찰이 이를 눈치 채고는 김교신 선생을 교단에서 추방시켰다. 그리고 성서조선지에 실은 글이 반일문서라 규정되어 함석헌 송두용 유달영 등의 12명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후로 실업자가 된 선생께서는 생업을 찾아 흥남비료공장에 기숙사 사감으로 취직하였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밤마다 도박판을 벌이고 월급을 타면 술값으로 허비하며 지냈다. 도박하고 술 마시니 싸움이 그치지를 않았다. 일본인 경영자들은 조센징들은 으레 그런 거라 치부하고는 그냥 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나 김교신 선생께서 사감으로 들어간 이후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밤마다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을 설득하였다.

"여러분 조국은 망하여 일본의 종살이 하는 터에 여러분이 이렇게 허구한 날 도박에 매달리면 여러분 개개인은 말할 것도 없겠거니와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발 도박을 끊고 건실하게 삽시다."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욕을 하고 행패도 부리고 미친놈이라고도 하였으나 선생께서 진심을 담아 계속하니 노동자들도 감동하여, 도박을 끊고 술을 절제하고 싸움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런 차에 전염병 장질부사가 기숙사에 밀어닥쳤다. 비료공장 사무처 일꾼들은 전염되지 않으려고 모두들 피하였다. 그러나 사감 김교신 선생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간호하고, 죽으면 시체를 수습하기를 계속하였다. 그러기를 밤낮 쉬지 않고 계속하니 선생을 아끼는 지인들이 간곡히 권하였다.

"지금 해방의 날도 가까워오는 시국인데 선생께서 그렇게 과로 하시면, 환자들을 돌보시다 감염되어 잘못되면 해방의 날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요. 제발 한동안 기숙사에서 나와 피하시요"

 

그러나 선생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답하였다.

"동포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터에 내가 살겠노라고 그 자리를 피한다면 내 어찌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겠소!"

이렇게 답하며 그 자리를 지키다 결국은 감염되어 숨졌다. 바로 해방되기 불과 네 달 전, 선생의 나이 45세 되던 1945년 4월 25일이었다.

 

(2013-02-28~03-08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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