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다윗의 지도력

Smart Lee 2013. 11. 3. 19:41

title

 

다윗의 지도력(1)

모든 사람은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공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실패로 끝나는 사람이 더 많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하면서도 실패자가 되는 것일까? 성경 중에 사무엘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다.

 

사무엘서에는 네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엘리 대제사장, 사무엘 선지, 사울 왕, 그리고 다윗 왕이다. 이들 네 사람 중에 엘리와 사울은 실패자가 되었고 사무엘과 다윗은 성공한 자가 되었다. 사무엘서에서는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밝혀 준다. 사무엘서를 찬찬히 읽어나가노라면 엘리와 사울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무엘과 다윗은 왜 성공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지금 이 나라에는 어느 때보다 지도자가 아쉬운 때이다. 지도력이 아쉽기로는 교회도 그러하고 나라에도 그러하다. 우리 국민들은 세계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 비하여 손색이 없는 우수한 국민들이다. 지도력만 제대로 들어서게 되면 세계사에 빛을 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국민들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 가지 복이 없는 국민들이다. 지도자 복이다. 국민들이 아무리 가능성이 있는 국민들이어도 그런 국민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미래를 향하여 뻗어 나가게 할 수 있는 지도력이 없으면 어찌할 수 있는 도리가 없다. 이점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열심이 있기로 세계에 알려진 교인들이다.

 

그러나 그 교회의 교인들이 아무리 열심이 있고 조건이 좋아도 교회를 이어가는 바람직한 지도력이 없으면 그 교회는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서로 반목하고 갈등을 나누며 에너지를 낭비하다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지금 서울에만도 그런 교회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다윗의 지도력을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다윗은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며 최선의 지도력을 발휘하였던 인물이다. 지금 이 나라의 사정이 안팎으로 몹시 어려운 때이기에 이런 때에 다윗 왕이 발휘하였던 그런 지도력이 꼭 필요하다. 다윗의 지도력을 통하여 우리는 열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다윗의 지도력에 나타나는 열 가지 지도력의 기준을 우리가 체득(體得)하게 되면 나라도 교회도 지금의 위기를 능히 극복하여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윗의 지도력(2)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여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이사야 28장 10절)

 

다윗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양치는 목동으로 시작하였다. 그런 그가 훗날에 왕중의 왕으로 성공에 이르게 된 비결의 첫째는 평생을 두고 꾸준히 배우고 또 배우는 삶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조직에나 지도자는 있기 마련이고 그 지도자들의 성공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남다른 수고와 인내로 배우고 또 배우며 이루어져 나간다.

 

이사야서 28장 10절에서는 그런 과정을 설명하여 준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온갖 시련과 경험을 쌓으며, 여기서 조금 배우고 저기서 조금 배워 가며 지도자가 되는 수련을 쌓아가게 된다.

 

다윗의 경우 대표적인 경우가 돌팔매질을 하던 능력에서 드러난다. 그는 소년시절 아버지가 양떼를 돌보라고 들로 보냈다. 그가 양떼를 돌보는 사이에 이리나 사자가 와서 양 새끼를 물고 달아나곤 하였다. 그러나 이리나 사자는 다윗이 가까이 이르기 전에 이미 달아나곤 하였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돌팔매로 이리나 사자를 물리치는 방법이었다. 물론 처음엔 돌팔매 솜씨가 서투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던지고 또 던지기를 끊임없이 거듭하였다. 수천 번 수만 번 거듭하는 동안에 백발백중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후에는 그의 솜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가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다윗이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사무엘상 18장 49절)

이 말씀에서 다윗이 던진 돌이 적장의 이마에 박혔다 하였다. 그의 돌팔매 솜씨가 얼마나 강력하였으면 돌이 이마에 박힐 정도였겠는가. 그의 이런 솜씨가 어찌 하루아침에 이루어졌겠는가? 끊임없는 노력으로 갈고 닦은 솜씨였을 것이다. 이런 수련의 과정이 그로 하여금 불세출의 영웅이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다윗의 지도력(3)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편 131편 1절)

 

시편 131편은 다윗이 젊은 날에 지은 시이다. 이 속에 그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담겨져 있다.

첫째 교만하지 아니하고 늘 겸손한 마음을 품었다. 잠언 16장 18절에 이르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하였다. 교만한 마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인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높아질까 전전긍긍한다. 지나친 자만심과 경쟁심으로 마음이 쉼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질투심을 일으킨다. 사울 왕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둘째 다윗은 자신의 분수를 지켰다. 항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하여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허황된 목표를 정하고, 자신이 도달하지 못할 목표에 정력과 시간을 낭비한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실패자로 삶을 마치게 된다.

 

다윗은 그 점에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눈높이를 낮게 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미치지 못할 일에는 적합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일을 맡겼다. 다윗의 이런 장점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로 팀을 만들어 조직을 강화하였다. 자신보다 나은 자질을 지닌 사람을 높여주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채워주며 팀으로 움직였다. 다윗은 겸손하였기에 책임은 자기가 지고 공적은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다윗이 이렇게 처신하니 성공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시대는 변할지라도 성공으로 이끄는 지도력의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다윗의 지도력(4)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편 131편 1~2절)

 

시편 131편은 다윗이 젊은 날에 지은 시이다. 이 시 속에 다윗이 한결같이 지녔던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그의 삶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다윗은 난세(亂世)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안팎으로 밀려드는 온갖 시련과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나갔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저력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131편 2절에 담겨져 있다.

 

"내가 내 영혼으로 평온하게 하기를..." 이렇게 시작되는 2절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처지에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평정심(平靜心)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살얼음판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그는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젖 뗀 아이 같은 평온함을 지켜 나갔다.

 

다윗은 불같은 정열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열에 휩쓸리지를 아니하고 자제(Self-control)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날마다 밀려드는 온갖 시련 속에서 자신의 평정심을 유지하여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토록 쌓아온 업적과 평판을 한 순간의 폭발로 허물어뜨린다. 그러나 다윗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마음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이런 내공(內功)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다윗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곤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우리와 달랐던 점은 그런 중에서도 그는 결정적인 때에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평정심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를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릇치고 만다. 감정이란 우리가 제대로 지배만 한다면 축복이 된다. 그러나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여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행복을 누리게 된다. 바로 다윗이 보여주었던 삶이다.

 

다윗의 지도력(5)

 

"다윗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 17장 45절)

 

우리는 다윗 왕이 위대한 왕인 줄은 잘 알지만 다윗 왕이 위대한 왕이 될 수 있게 한 사람인 사무엘에 대하여는 잊기 쉽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기에 영적 지도자로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백성들을 이끌었던 영적 지도자였다. 그를 일컬어 마지막 사사요 첫 번째 선지자라 한다.

 

백성들이 수차례나 그에게 와서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영적 지도자로써의 자기 자리를 지키며 정치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그에게 왕이 되어 달라 간청할 때에, 그는 자신이 왕이 되는 대신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여 왕으로 세웠다. King Maker의 역할을 하였다. 그가 첫 번째 세운 왕이 사울 왕이었다.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된 후에 본분을 잊고 왕다운 왕이 되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다시 세운 왕이 다윗이다.

 

사무엘이 다윗을 처음 만난 때는 다윗이 20세 안팎의 나이로 양치기 소년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깊은 영적 통찰력으로 그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차기 왕으로 다윗에게 안수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그렇게 안수 받았다하여 금방 왕이 된 것이 아니었다. 왕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훈련이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그의 첫 훈련이 아버지가 맡긴 양떼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는 좋은 양치기가 되기 위하여 스스로 훈련한 솜씨가 돌팔매였다. 양을 헤치는 짐승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돌팔매를 수련하였다. 그렇게 쌓은 실력이 그로 하여금 왕이 될 수 있는 첫걸음을 딛게 하였다.

 

그가 들에서 홀로 양떼를 돌보는 동안에 블레셋군이 침공하여 왔다. 블레셋군에 골리앗이란 엄청난 힘을 지닌 거인이 등장하여 이스라엘 측에서는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전장에 나간 형님들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러 갔던 다윗이 그런 모습을 보고는 의분을 견디지 못하여 자신이 골리앗 앞에 섰다. 작은 체구의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고부동한 신앙과 신념 탓이었다. 그런 확고한 신앙과 신념이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골리앗에게 다가가며 다음 같이 말하였다.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너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간다."

 

모름지기 예나 지금이나 역경을 극복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 인물들이 지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소년 다윗이 지녔던 신념이다. 그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용기이다. 어떤 난관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이다.

 

다윗의 지도력(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사무엘상 30장 6~8절)

 

다윗이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최악의 조건에서 몸을 일으켜 왕 중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그가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를 수 있었던 비결의 무엇이었을까?

사무엘상 30장에서 그 비결의 하나를 보여준다. 다윗 일행이 시글락에 머물고 있었을 때다. 다윗과 그의 군대 600명이 출정하여 자리를 비운사이에 아멜렉 사람들이 그들의 근거지를 기습하여 그들의 처자식들을 몽땅 포로로 끌어가버렸다. 다윗 일행이 돌아와 보니 성은 불타고 처자식들은 흔적조차 없었다. 얼마나 낙심하고 슬펐던지 그들이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다.

 

이에 백성들이 이성을 잃고 지도자 다윗을 돌로 치려는 정도로까지 감정이 폭발하였다. 다윗이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그는 당황함이 없었다. 오로지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여호와께. “내가 추격하면 적군을 따라잡을 수 있겠나이까?”하고 기도로 물었다.

 

다윗은 이렇게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물었다. 그리고 그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물을 때마다 하나님께선 바른 길로 인도하셨다. 이것이 다윗이 성공에 이를 수 있는 비결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기도로 여호와께 물었다. 그가 기도로 물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용기를 주셨다. 그러나 그의 정적인 사울 왕은 그러지를 못했다. 사울 왕은 블레셋군이 대거 침공하여 왔을 때에 두려움에 휩싸여 떨던 나머지 무당을 찾아가 물었다. 그 전투에서 패전하여 사울 왕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리고 다윗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다윗의 성공의 비결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 길을 열어나갔던 데에 있었다.

 

다윗의 지도력(7)

 

젊은 날의 다윗이 평생을 이어갈 지도력을 연마한 도장(道場)이 있다. 그의 멘토였던 사무엘이 세운 <라마-나욧>이다.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마을 이름이고 나욧은 히브리어로 공동체를 뜻하는 단어이다. 사무엘이 은퇴 후에 자신의 고향 땅인 라마로 내려가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함께 기도하고 토론하며 민족의 나갈 길을 모색하던 공동체가 "라마-나욧"이다.

 

사울 왕은 국민적 인기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다윗을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온갖 방법을 다하였다. 정예군사 3천명을 뽑아 다윗을 사살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이스라엘 땅이 이 그때나 지금이나 좁기로는 강원도만한 넓이여서 다윗이 숨을만한 곳이 없었다. 다윗은 도망 다니던 끝에 사무엘의 '라마-나욧"으로 찾아갔다.

 

사무엘은 다윗을 "라마-나욧" 공동체에 받아들여 함께 살며 다윗 인생의 멘토가 되었다. 다윗은 사무엘 문하에서 새로운 시대의 지도력을 연마할 수 있었다. 사무엘이 죽자 다윗은 사울 왕의 손길이 뻗치기 전에 "라마-나욧"을 탈출하여 <아둘람굴>로 도피하였다. 다윗이 아둘람굴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펴져나가자 각지에서 그를 추종하는 일꾼들이 모여들었으니 그 수가 4백 명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동굴로 도망가니 그 형제들과 아버지 집안의 온 집안이 그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았다. 이에 모든 곤고한 자, 모든 빚진 자 및 모든 불만을 품은 자가 그에게 모이매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사무엘상 22장 1,2절)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부도난 자, 수배 당한 자 그리고 뜻은 있으나 펼칠 길이 없는 자들이 그에게로 모여 들었다. 그곳은 먹을 양식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마실 물조차 부족한 후미진 곳이었다. 그곳에 모여든 4백 명은 잘해야 중국의 양산박이나 한국의 활빈당 같은 부류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다윗의 지도력에 힘입어 그들은 다윗왕국을 건설하여 역사를 빛내는 동지들이 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게 하였을까? 다윗이 사무엘의 라마-나욧 공동체에서 체득한 지도력 탓이었다.

 

다윗의 지도력(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 57편 7, 8절)

 

어제 글에서 다윗과 그의 동지 4백 명이 아둘람굴에 몸을 숨기고 지냈던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여러해 전 이스라엘 성지여행을 갔을 때에 아둘람굴을 찾아 갔었다. 30여 평 남짓이나 되는 땅굴이 두개가 이어져 있었는데, 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넓이에 잡목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냥 지나쳐서는 그곳에 그런 굴이 있는 줄을 눈치 채지 못할 모양새였다.

 

그렇게 좁은 곳에 4백 명이 모여 살았을 때에 서로 간에 스트레스로 어떻게 지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에 힘입어 그 자리가 다윗 왕국을 창출하는 못자리가 되었다. 훗날 다윗 왕국을 지탱한 요직에는 거의 아둘람굴 출신들이 있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살아남기도 급급하였을 그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내는 산지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이 다윗이 아둘람굴 시절에 쓴 신앙 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시편 57편이 그 시이다. 57편 7절과 8절에 그 시절 다윗과 그의 동지들이 품었던 비전과 꿈이 담겨져 있다.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겠습니다!"라는 비전이다. 그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살면서도 최상의 비전을 품고 살았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여 나갈 수 있었다.

 

어두움에 처한 조국의 역사에 새벽을 깨우겠노라는 비전이다. 절망 중에 탄식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의 새벽을 알리겠다는 꿈이다. 그런 비전이 있고 꿈이 있었기에 그들은 운명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 이 나라와 교회에 꼭 있어야 할 비전이요 꿈이 아니겠는가!!!

 

다윗의 지도력(9)

 

"다윗이 그들 앞에서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하니라.(사무엘상 21장 13~15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시작하기 전이다. 연세대학 정치학과 교수 중에 주관중 박사란 교수가 있었다. 그가 “정치공학(Political Manipulation)”이란 제목의 책을 써서 시중서점에 보급하였다. 이를 알게 된 청와대에서 이 책을 전부 사들여 폐기처분하고는 주관중 교수를 대통령 정치특보로 발탁하였다. 정치공학이란 국가를 통치하는 기술을 다루는 학문이다. 민심을 어떻게 장악하며 반대하는 세력을 어떻게 무력화 시키며 선거에서는 어떻게 승리하느냐 등을 다루는 분야이다.

 

당시로써는 정치공학의 대가였던 주관중 교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구상하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였을 것이다. 정치공학을 선한 지도자가 활용하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사용하게 질 것이요 악한 지도자가 활용하면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에 사용할 것이다.

 

정치공학적인 기술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선한 정치에 이용하였던 인물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이다. 간디는 여론이 양분되어 국가적인 위기가 올 때는 단식에 들어갔다. 간디가 단식하게 되면 모든 여론기관들이 하루하루 간디의 근황을 보도하곤 하였다. 그의 금식이 보름을 넘어서게 되고 20일이 넘게 되면 온 국민들이 간디를 살려야 한다며 들 끊게 되었다. 그러면 간디의 정책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여론에 밀려 반대를 포기하고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경의 인물 중에는 다윗이 정치공학을 활용함에 일인자였다. 그는 권좌에 오르기 전까지 수차례나 위기를 맞곤 하였다. 그럴 대마다 정치공학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여 나가곤 하였다. 사무엘상 21장에서 다윗은 아기스 왕의 궁궐에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대 그는 미친척하여 살아남게 되었다. 다윗이 거짓 미친척하여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치광이 노릇을 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난세에 자신의 뜻을 이루고 경륜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다윗의 지도력(10)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

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사무엘하 12장 13절)

 

천신만고 노력 끝에 다윗이 드디어 왕이 되었다. 그가 왕이 된 후 영토는 넓어지고 국력은 충실하여졌다. 만사가 잘 되어가는 듯하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란 말도 있듯이 매사가 잘 진행되어 갈 때에 문제가 생겼다. 다윗이 군대를 전선으로 보낸 후 자신은 왕궁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을 때였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사무엘하 11장 1~3절)

다윗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된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가 왕이 되어 만인의 칭송을 받게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무료함을 달래던 그가 옥상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여인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다윗이 그냥 보는 것으로 멈추지를 않고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란 여인이었다. 연이어 다윗 일생에 가장 치명적인 범죄가 이어졌다. 그녀와 통정하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알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 충성된 장군을 전선에서 전사하게 만들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다윗이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 그냥 묻혀 지나갈 수는 없었다. 하나님의 사람 나단이 이 일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고, 민심을 대변하여 다윗을 찾아와 신랄하게 책망하였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사무엘하 12장 9절)

나단 선지가 다윗 왕 앞에서 엄중히 책망하였을 때에 다윗은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였다. 이점이 그가 다른 권력자들과 다른 점이었다. 절대 권력자인 왕이 사람들 앞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히 회개하였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사무엘하 12장 13절)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지도자는 아름다운 지도자이다. 다윗은 그런 점에서 성공한 지도자였다. 그는 나단 선지의 책망을 듣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다. 이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 그리고 다윗이 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이르셨다.

 

(2013-04-09/20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