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우승 조성진, "김연아가 금메달 딴 것과 맞먹는 쾌거!"
세계 최고(最高)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신동(神童)이 천재(天才)로 비상했다. 20일 밤(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폐막한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조성진(21)이 1등을 차지했다. 콩쿠르 역사상 한국인 최초 우승이다. 서양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악기인 피아노 분야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백인들의 아성이던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과 맞먹을 만한 감동과 쾌거"(피아니스트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다.
조성진은 폴로네즈(폴란드 무곡) 최고 연주상까지 거머쥐었다. 3만유로(약 3800만원)와 3000유로(약 380만원)를 상금으로 받고, 세계 각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당 타이 손(베트남·1980년)과 윤디 리(중국·2000년)에 이어 세 번째 우승이다. 우승 발표 직후 조성진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콩쿠르에서 우승해 믿을 수가 없다"며 "앞으로 해야 할 연주 준비 때문에 지금 사실 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1위가 발표됐던 순간엔 "약간 멍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우승은 41년 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정명훈에 이어 한국 음악계 최대 경사로 꼽힌다.
1974년 당시 21세였던 정명훈은 빨간 오픈카에 올라 서울시청 앞까지 퍼레이드를 했다. 조성진의 스승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은 "충분히 상 받을 자격이 있는 연주였다"며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뛴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는 숱한 스타를 배출한 산실(産室)로 정평이 나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 스타니슬라프 부닌(1985년) 등 역대 우승자들은 '피아노의 전설'로 남을 만큼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조성진은 열다섯 살이던 2009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에 이어 지난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3위에 머물렀다. 수줍음 많고 말수 적은 그는 절치부심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전 세계 16~30세의 연주자들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오로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곡으로만 실력을 겨루는 쇼팽 콩쿠르는 그에게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올 초 여기에 나가기로 결심한 조성진은 대회를 앞두고 휴대폰을 없앴다. 카톡과 문자도 끊었다. 일찌감치 출전을 선언한 뒤 9개월간 쇼팽만 연주했다. 최종 심사 발표를 앞두고 쇼팽 콩쿠르협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쇼팽만 연주하고, 쇼팽처럼 살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조성진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도했던 박숙련 순천대 교수는 "성진이는 피아노 앞에서 손가락으로만 치는 게 아니라 곡 하나를 두고 관련 책을 수십 권 찾아 읽고, 음반도 100개씩 돌려 듣고, 미술관·박물관에도 자주 가며 다채롭게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조성진은 예원학교·서울예고를 거쳐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2015-10-22 조선일보)
[문화산책] 유럽은 한국문화 열풍
국악·음식·패션… ‘원더풀 코리아’
관심 식지 않게 다양한 문화 외교를
얼마 전 유서 깊은 파리 샤이오 국립극장에서 한국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악 공연이 있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종묘제례악은 그동안 유럽에서 몇 차례 약식으로 공연된 적은 있었지만, 115명의 연주자가 원형 그대로 온전한 가(歌)·무(舞)·악(樂)의 진수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의 안위를 염원하는 궁중 제례악이지만, 절제된 연주력과 화려한 색상의 시각적 효과는 프랑스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종묘제례악 공연을 시작으로 올 한해 프랑스 주요 도시에 150회에 이르는 한국문화 행사가 열린다.
유럽 예술의 중심 프랑스에서 집중 소개되는 한국문화 콘텐츠는 국악에서 케이팝, 현대무용, 영화,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표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안은미의 연작 시리즈 공연과 안숙선 명창의 수궁가 공연 역시 전석 매진됐고, 파리장식미술관에서는 ‘코리아 나우’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내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요즘 유럽에서 일고 있는 한국문화 열풍은 심상치가 않다. 사실 1980년대 이전까지 유럽에서 한국 문화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백건우 정도만 한국의 문화를 유럽에 알린 이들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가 유럽 영화제에 집중적으로 알려지고 유럽의 유명 클래식, 무용 콩쿠르에서 한국 예술영재들이 잇따라 우승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유럽인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며칠 전 5년에 한 번꼴로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서 21세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2011년에는 벨기에 국영방송이 한국 클래식 예술가의 막강한 파워를 집중 조명하는 1시간짜리 방송을 제작했고, 같은 해 프랑스 파리에서는 케이팝 스타를 보고 싶은 유럽 10대 팬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르 제니트’ 공연장에서 ‘에스엠 타운라이브 인 파리’ 공연이 성황리에 개최되기도 했다. 이듬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아이튠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인조차 잘 모르는 ‘잠비나이’ ‘숨’ ‘비빙’과 같은 국악 앙상블 그룹은 글랜스톤베리, 워매드, 워멕스와 같은 유럽 최대 록페스티벌과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국악과 록을 접목한 ‘잠비나이’는 한국 밴드 중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고 올해만 유럽에서 20여회의 공연을 했고, 내년 2월 영국 최고 음반사에서 이들의 두 번째 음반이 전 세계 발매를 앞두고 있다. ‘숨’은 지금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현지 관객만을 대상으로 장기 투어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이뿐 아니라 헝가리 터키 스페인 등에서 한국의 음식, 패션, 뷰티, 한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른바 ‘유럽행 한류’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동시대 문화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장르, 규모, 반응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재 한국문화만큼 유럽에서 부상하는 아시아 권역의 문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문화 열풍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것은 일본과 중국의 문화에 먼저 관심을 가졌던 유럽인의 자연스러운 후속 반응일 수 있다. 유럽에서 지난 20년 사이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한국문화원을 개원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한 소위 ‘문화외교’ 정책의 몫도 크다.
문제는 유럽에서 일고 있는 한국문화 열풍에 대해 지나친 문화민족주의를 경계하면서 문화 다양성의 원리 하에 한국문화를 폭넓게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가에 있다. 마치 한국문화가 아시아 국가 중 전례 없이 각별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질 낮은 문화민족주의는 한국문화가 유럽 권역에 안착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케이팝에서 국악까지, 전통예술에서 현대예술까지, 문화유산에서 라이프스타일까지 한국문화가 유럽인에게 일시적인 호기심의 대상에서 지속적인 공감의 대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민간 주도의 실로 다양한 문화외교의 장이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유럽 예술의 중심 프랑스에서 집중 소개되는 한국문화 콘텐츠는 국악에서 케이팝, 현대무용, 영화,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표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안은미의 연작 시리즈 공연과 안숙선 명창의 수궁가 공연 역시 전석 매진됐고, 파리장식미술관에서는 ‘코리아 나우’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내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
한국인조차 잘 모르는 ‘잠비나이’ ‘숨’ ‘비빙’과 같은 국악 앙상블 그룹은 글랜스톤베리, 워매드, 워멕스와 같은 유럽 최대 록페스티벌과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국악과 록을 접목한 ‘잠비나이’는 한국 밴드 중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고 올해만 유럽에서 20여회의 공연을 했고, 내년 2월 영국 최고 음반사에서 이들의 두 번째 음반이 전 세계 발매를 앞두고 있다. ‘숨’은 지금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현지 관객만을 대상으로 장기 투어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이뿐 아니라 헝가리 터키 스페인 등에서 한국의 음식, 패션, 뷰티, 한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른바 ‘유럽행 한류’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동시대 문화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장르, 규모, 반응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재 한국문화만큼 유럽에서 부상하는 아시아 권역의 문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문화 열풍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것은 일본과 중국의 문화에 먼저 관심을 가졌던 유럽인의 자연스러운 후속 반응일 수 있다. 유럽에서 지난 20년 사이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한국문화원을 개원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한 소위 ‘문화외교’ 정책의 몫도 크다.
문제는 유럽에서 일고 있는 한국문화 열풍에 대해 지나친 문화민족주의를 경계하면서 문화 다양성의 원리 하에 한국문화를 폭넓게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가에 있다. 마치 한국문화가 아시아 국가 중 전례 없이 각별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질 낮은 문화민족주의는 한국문화가 유럽 권역에 안착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케이팝에서 국악까지, 전통예술에서 현대예술까지, 문화유산에서 라이프스타일까지 한국문화가 유럽인에게 일시적인 호기심의 대상에서 지속적인 공감의 대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민간 주도의 실로 다양한 문화외교의 장이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2015-10-23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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