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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횃불'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행사 열려

Smart Lee 2010. 3. 26. 13:59

'평화의 횃불'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행사 열려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넋을 기리는 추념식과 기념행사가 뜨거운 열기속에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광장에서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김태영 국방부 장관,김 양 국가보훈처장 등 정부 주요인사와 안의사 유족,광복회 등 관련단체 인사,시민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추념식이 열렸다.

'겨레의 등불,평화의 횃불'이라는 주제로 열린 추념식은 헌화 및 분향,안 의사 약전낭독, 추모공연, 추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정운찬 총리는 추념사에서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하신 지 꼭 100년 되는 날을 맞아, 여러분과 더불어 안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거룩한 삶을 되돌아보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정총리,"안 의사 유해 찾아 모셔오도록 노력"

정 총리는 또 "아직까지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유해발굴 추진단을 발족시키고 일본과 중국의 협조를 얻어 유해를 모셔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앞으로 안 의사의 유해 봉환을 비롯해 선열의 높은 뜻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조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안 의사의 뜻을 기려 조국발전에 더욱 매진하자고 다짐했다.

추념식 후에는 정부 주요인사와 한.중.일 시민 등 행사 참가자들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1㎞ 구간에서 평화대행진을 했다.

행진대열에는 대형 태극기를 선두로 취타대와 100여명이 든 추모기,60명의 군악대가 따랐고 태권무, 비보이 공연도 선보였다.

같은 시간 안 의사의 허묘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에서도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등 4개 단체가 주관하는 추모제가 거행돼 안 의사의 큰 뜻을 기렸다.

또 배화여고 등 서울시내 10여 개 학교에서는 1만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안 의사 공적낭독과 헌시낭독, 안의사께 바치는 글,영상물 상영,손도장 찍기 등 다양한 추념행사를 진행했다.

◈ 전국 곳곳, 해외서도 추모 열기

부산 을숙도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1천여명이 안 의사에게 바치는 글짓기 대회를 열었고, 전남 함평 상해임시정부청사 복원터에서는 동상건립 행사가 진행됐다.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성지 내 실버타운 마을에서도 안 의사 동상 제막식이 열렸고, 파주출판도시에서는 안 의사의 아명을 딴 응칠교 다리밟기 행사가 개최됐다.

경기 부천 중동신도시 안중근 공원에서는 음악회와 함께 추념식이 열렸다.


◈ 뤼순감옥서 남북 합동추도제

해외에서의 추모 열기도 뜨겁다.
미국 뉴욕에서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와 광복회,흥사단 뉴옥지회 등이 추념식과 유묵전시회,기념강연회 등을 열어 안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

함세웅 신부 등 기념사업회측 관계자 100여명은 중국 뤼순감옥 안에서 조선종교인협의회를 비롯한 북한 측 관계자들과 함께 추도제를 거행했다.

광복회와 독립기념관 등 관련 단체에서는 특집다큐멘터리 제작과 국제학술회의,창극 '불멸의 영웅 안중근'순회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분위기를 이어갈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홈페이지(www.mpva.go.kr)에 온라인 추모마당을 개설, 사이버 헌화 및 분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2010-03-26 노컷뉴스/ CBS정치부 이동직 기자]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국내외 '추모 열기'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26일 국내외에서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겨레의 등불, 평화의 횃불'이란 주제로 열린 안중근 의사 추념식에는 정운찬 국무총리 등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광복회원, 시민 등 2천여명이 헌화 및 분향, 안 의사 약전 낭독, 추모 공연 등을 가진 뒤 광화문 광장까지 평화행진을 벌였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안 의사의 허묘(虛墓)가 마련돼 있는 효창공원에서 추모제를 갖고 안 의사의 큰 뜻을 기렸으며 배화여고를 비롯한 서울시내 10여개교는 안 의사 공적과 헌시 낭독, 안 의사께 바치는 글, 손도장 찍기 행사를 했다.

광복회와 독립기념관은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과 창극 '불멸의 영웅 안중근' 순회공연, 국제학술회의, 의거현장 재현 전시 등을 열어 안 의사를 추모했다.

보훈처는 온라인 추모마당(www.mpva.go.kr)을 개설해 인터넷상에서 헌화하고 분향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내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과 전남 함평 상해임시정부청사 복원터에서는 동상제막 및 건립행사가 열렸고, 파주출판도시에서는 안 의사의 아명을 딴 '응칠교 다리밟기' 행사가 진행됐다.

특히 함평 행사에서는 안 의사의 신분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복원하고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으로 1계급 특진시키기 위한 국회청원 결과를 추인하는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 추인식'이 열렸다.

부산역 광장에서는 안 의사 알리기 캠페인과 독립유공자 사진전에 이어 부산 을숙도 초등학생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안 의사의 독립 및 평화정신을 계승하는 글짓기 대회가 마련됐다.

안 의사의 순국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해외에서도 줄을 이었다.
미국 뉴욕에서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광복회, 흥사단 뉴욕지회 공동주관으로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념식과 유묵전시회, 기념강연회 등이 열렸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5명과 학자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해 이날 하얼빈(哈爾濱)과 뤼순(旅順)에서 안 의사 순국 10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한국 방문단이 중국에서 당국의 승인을 받아 안 의사 추모행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0-03-26 연합뉴스 김명균 기자)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후 중국대륙이 열광 安의사는 벗같은 존재”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중국 쑹청여우(宋成有) 베이징대역사학과 교수와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2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동양포럼'에 참석, 특별 강연을 한다. 또 산자부장관을 지낸 김영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안중근의 동양평화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행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운동'의 배경이 된 국채보상운동 발상지가 대구라는 점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25일 미리 배포된 강연내용에서 쑹청여우 교수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국 전체를 감동시키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안중근 의사만한 사람은 없다."면서 근대 중국은 다음과 같이 세 차례에 걸쳐 안중근 의사에 열광했다고 강조했다.


# 첫번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소식은 중국 대륙 각계 인사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줬다. 1914년 박은식 선생이 쓴 '안중근전'은 대륙에 추모열기를 더했다.


# 두번째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열리던 즈음에 삼천리강산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두 달 뒤 5·4애국운동이 폭발해 항일정신이 고조됐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중국)전국을 돌며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 '안중근-망국한'을 올렸다.


# 세번째


항일전쟁기간이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일본은 동삼성을 침략, 점령했다. 그리고 1937년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략해왔다. 국공합작이 체결됐고 광복군, 조선의용대 등도 항일전쟁에 동참했다. 안중근 연극을 올렸고 1944년 후난성의 명사인 쩡위안이 '안중근'을 썼다.


쑹청여우 교수는 이와 함께 "중국인에게 안중근 의사는 어려움을 함께 겪은 벗과 같은 존재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면서 1992년 한·중 국교체결 이후 안중근 연구는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도 비중있게 언급했다.


한편 와다 하루키 교수는 안중근 의사 입장에서 일본 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보수사관을 비판했으며, 김영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회장은 "안 의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민 주도로 일어나고 시민대표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것을 동양 전체로 확대해 새로운 시민층의 대표로 구성되는 동양평화회의를 구상했다." 고 밝혔다.


(2010-03-26 김문 부국장·박록삼 기자

 

일본서 안 의사 재평가 움직임 '고개 ' 


[앵커멘트]'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특히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김상우 특파원이 전합니다.

[리포트]

일본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목숨을 잃자 최초의 국장을 치른 뒤 1,000여 평이 넘는 부지에 각종 석물과 거목으로 단장한 묘지에 시신을 안치했습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와 참고서 등 각종 서적을 보면 대부분 이런 존경 받는 정치인이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에 의해 테러를 당했다고만 간략하게 기술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 안 의사는 '테러범' '혹은 암살자' '사살자'라는 꼬리표를 가진 부정적 인물로만 여겨지는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학계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안 의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됩니다.

일본의 전통 있는 한 극단은 한국의 식민지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연극을 공연하면서 안 의사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며 역사 바로 보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터뷰:관람객]

"과거에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기념관 등에서 자료를 읽어보니까 아 훌륭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바로 알리려고 일본의 시민들과 학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한국병합100년 시민네트워크'의 경우 이전 같으면 상상조치 하기 힘든 안 의사 자료 전시회를 지난해 개최했습니다.

이런 전시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학자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에 대한 단편적 시각에서 벗어나 독일의 비판철학의 대가 칸트와 비교하는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사사가와 노리가쓰, 일본 메이지대 교수]

"'자주독립과 전쟁하지 않는다'에 대해 (안 의사와 칸트) 비슷하게 말했지만, 이것에 대해 칸트는 구체적 계획을 내지 않았고, 안중근은 구체적인 평화정책을 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커다란 차이입니다."

일본 학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안 의사의 평화 사상이 시대를 내다보는 선구자적인 탁견이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동양평화를 위해 일을 했으며 내가 죽은 뒤에도 한·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일본에서 안 의사에 대한 재평가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쿄에서 YTN 김상우입니다.

(10-03-26 YTN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