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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팬퍼시픽 자유형 400m 결선, 올해 세계 최고 기록 '금'

Smart Lee 2010. 8. 22. 15:13

 박태환, 팬퍼시픽 자유형 400m 결선, 올해 세계 최고 기록 '금'

 


'마린보이' 박태환(21ㆍ단국대)이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박태환은 이틀 전 자유형 1500m 노메달의 부진을 떨치면서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우승 전망을 밝게 했다. 그는 이틀 전 벌어진 이 대회 자유형 200m에선 은메달, 자유형 1500m에선 8위를 했었다.

 박태환이 21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의 윌리엄 울렛 주니어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2010년 팬퍼시픽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 결선에서 올 시즌 세계 최고 기록인 3분44초7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4년 전 이 대회 이 종목에서 우승했던 박태환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박태환은 캐나다의 코크레인(3분46초78)과 라이벌 중국의 장린(3분46초91)을 따돌렸다. 박태환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다툴 장린 보다 무려 2초18이나 빨랐다.

 예선 전체 1위로 가장 좋은 4레인을 배정받은 박태환은 150m에서 4위로 처지면서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300m를 턴 한후 폭발적인 스퍼트를 해 선두 코크레인을 따돌렸다. 350m를 1위로 돈 박태환은 마지막 구간에서 힘을 내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장린은 박태환이 앞으로 치고 나갈 때 따라오지 못했다. 1500m에서 박태환을 앞섰지만 400m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박태환은 이번 우승으로 1년 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 예선 탈락의 아픈 추억을 말끔히 씻어냈다. 당시 장린은 3분41초35로 박태환이 갖고 있던 종전 아시아기록(3분41초86)을 깨트린 바 있다.

                                                     

                                                    <2010-08-21 스포츠조선 노주환기자>

 

'21살 청년' 박태환, 환희와 좌절 그리고 '부활'

 

21살 청년이 불과 5년 사이에 다른 이들 같으면 몇 십년 동안에 겪을 수 있는 일을 압축해서 경험했다. 즐거움과 고통교차한 지난 몇 년이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와 함께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세대 체육인인 박태환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다. 올림픽 챔피언이 지난해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200m와 400m에서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자 "훈련 태만", "예고된 참패"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이 무렵 박태환은 "아나콘다에게 목을 졸려 죽어 가는 꿈을 꿨다"고 말할 정도로 주위의 기대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잠시 4, 5년 전으로 돌아가자. 그때는 주변의 몇몇 관계자들 외에는 박태환도 김연아도 지켜보거나 애정을 갖고 성원하는 응원군이 없었다.

박태환이 이번에 자유형 400m 1위와 200m 2위에 오르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범태평양수영선수권대회는 4년 전에는 캐나다에서 열렸다. 박태환은 이 대회 자유형 400m에서는 3분45초72, 1500m에서는 15분06초11로 1위를 차지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한 뒤 14개월여 만인 2005년 제86회 울산 전국체육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혔고 다시 10개월여 만에 세계 수영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초고속 성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4개월여 뒤 이번에는 제15회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남자 수영 선수로는 처음으로 3관왕이 됐다. 박태환 이전에 아시아경기대회 수영 다관왕은 조오련(작고, 1970년∙1974년 대회 2관왕)과 최윤희(1982년 대회 3관왕, 1986년 대회 2관왕) 뿐이었다.

1980년대 최윤희가 아시아 최고의 배영 선수로 이름을 떨치자 전국의 수영장에는 때 아닌 배영 폼이 유행했던 것처럼 박태환의 등장으로 이번에는 "음~파, 음~파"하며 고개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자유형 폼이 전국 수영장에서 유행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와 정현숙을 앞세운 한국이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하자 전국 탁구장에는 탁구를 치는 청소년들로 넘쳐 났다. 엘리트 스포츠가 생활체육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아무튼 또다시 3개월여 뒤인 2007년 3월 이번에는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자유형 400m 선수권자가 됐다. 그리고 다시 17개월여 뒤 이번에는 베이징 대회에서 역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자유형 400m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2년여에 걸친 압축 성장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성장은 여기까지였고 지난해 박태환은 고전을 거듭했다. 여기서 박태환 이전의 한국 수영이 어땠는지 잠시 알아보자.

한국이 주요 국제대회 수영 종목(경영)에서 획득한 첫 메달은 조오련의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자유형 400m, 1500m 금메달이다.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조오련이 다시 같은 종목에서 2관왕이 된 이후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수영에서 금메달이 나온 것은 16년이나 지난 뒤인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였다. 그 무렵 ‘신기록 제조기’로 불리던 지상준이 배영 200m에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박태환의 등장 이전에 조오련과 지상준을 빼고 아시아경기대회 수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방승훈(1994년 히로시마 대회 자유형 400m)과 김민석(2002년 부산 대회 자유형 50m) 뿐이다.

 

여자는 성적이 더 나쁘다. 최윤희가 1982년 뉴델리 대회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딴 것까지 포함해 한국이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수영에서 획득한 금메달은 달랑 6개인데 금메달리스트의 이름은 최윤희와 김희연(1998년 방콕대회 접영 200m) 뿐이다. 같은 기초 종목인 육상에도 밀리는 낯 뜨거운 성적이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변변한 실내수영장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물살을 갈랐던 선수들을 생각하면 지난날의 성적을 무작정 탓할 일만도 아니다. 1970~80년대 한국 여자 수영의 보배인 최윤정(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배영 100m, 200m 은메달리스트)-윤희 자매도 동대문운동장 야구장과 축구장 사이 뒤쪽에 있는 낡아 빠진 실외 수영장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곤 했다.

 

제자리걸음하던 한국 수영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 그리고 전국체육대회를 치르기 위해 서울과 지방에 국제 규격의 실내 수영장이 세워지고 동네마다 소규모 실내 수영장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박태환이 없으면 한국은 여전히 수영 후진국이다. 박태환은 이제 한국 수영의 명예를 걸고 오는 11월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향해 또다시 물살을 가른다. 수영 선수들은 훈련량이 많을 경우 하루 10km 정도를 헤엄친다. 훈련이 고통스러워 물 속에서 우는 선수도 있다.

 

이제 다시 박태환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는 일은 없어야겠다.

 

◇박태환 400m 기록

2005년 3월 동아대회 3분50초37 한국신기록
2005년 10월 전국체전 3분50초16 한국신기록
2005년 11월 마카오 동아시아경기대회 3분48초71 한국신기록
2006년 8월 범태평양선수권대회 3분45초72 아시아신기록(금메달)
2007년 3월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3분44초30 아시아신기록(금메달)
2008년 4월 동아대회 3분43초59 아시아신기록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3분41초86 아시아신기록(금메달)
2009년 7월 로마 세계선수권대회 3분46초04 예선 탈락
2010년 2월 뉴사우스웨일스스테이트오픈 3분45초03 금메달
2010년 8월 범태평양선수권대회 3분44초73 금메달

 

*아시아 최고기록= 장린(중국) 3분41초35
세계 최고기록= 파울 비더만(독일) 3분40초07

 

(10-08-22 스포츠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