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니라

Smart Lee 2010. 11. 6. 14:53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니라.(1)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장 23절)

지난 글에서 우리나라가 온갖 악조건을 딛고 일어나서 이만큼이나마 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자신들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법을 두 가지 실천하였기 때문이라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 첫째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라 지적하였다. 오늘은 두 번째를 쓰고자 한다. 바로 토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성경은 토지에 대한 매매나 투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 모든 토지의 원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그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주인 토지를 임시로 위임 받아 경작하고 있는 관리인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였다는 것은 1949년에서 1950년 사이에 실시하였던 농지개혁법을 일컫는다, 그전에는 지주가 많은 땅을 소유하고 농민들은 소작인이 되어 해마다 높은 비율의 소작료를 지급하고 있었다. 이 제도를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돌려주는 개혁법을 실시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재위 시에 조봉암이 농림부장관으로 있으면서 확고하고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토지개혁을 집행하였다.

북한에서는 해방 후에 진작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하여 지주의 땅을 정부에서 강제로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남한에서 실시한 경우는 "유상매수 유상분배"라 하여 정부가 지주들에게 일정액의 값을 지급하고 사들여 소작인이던 농민들에게 분배한 후 장기 저리로 토지의 값을 상환토록 하였다. 그런데 이런 토지개혁법이 성경적 토지제도에 매우 가까운 법이었기에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니라.(2)

 

 

남한에서 농지개혁이 마무리 된 때는 1950년 4월 20일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두달전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농지개혁 작업을 마치게 된 것이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어느 경제학자가 말하기를 그때 농지개혁을 완성하지 못하였더라면 6.25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지적하였다.

무슨 말인가 하니 농지개혁이 제때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6.25 전쟁에서 지방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인한 소작인인 농민들의 봉기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군이 남침할 때에 서울만 점령하고 나면 이에 호응한 민중 봉기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남한의 공산화를 쉽사리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전쟁 직전에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분배하여 주었기에 자신의 농지를 받게 된 농민들이 받은 땅을 지키기 위하여서라도 북한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래서 남한이 공산화되지를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토지개혁을 할 때에 좀 더 철저히 하지를 못하고 취약점을 남긴 채 한 것이 훗날 어려움을 일으키게 되었다. 토지라면 농지, 산지, 대지 세 가지가 합하여 토지라 한다. 조봉암 장관이 주도한 개혁작업팀이 마련하였던 원안에는 이들 세 가지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개혁안이 통과될 때에 지주들의 로비가 먹혀들어 산지와 대지는 개혁 대상에서 빠지고 농지만이 개혁되게 되었다. 그때 집 짓는 땅인 대지(垈地)가 빠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 대지 값의 상승으로 인하여 주택값이 오르게 되고 주택값이 오른 탓으로 서민들이 집을 마련하는 데에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다.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니라.(3)

 

 

여호수아 장군을 자도자로 삼아 가나안 땅 정착에 성공케 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12 지파가 각 지파별로 분배한 후 지파 안에서는 각 가정 별로 제비를 뽑아 분배하였다. 그렇게 제비를 뽑아 자기 가정에 배정된 땅을 기업(基業)이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제비를 뽑을 때에 설사 구석진 곳에 좋지 않은 땅이 배정되었을 경우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제비 뽑는 절차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자기 가정에 가장 합당한 땅이 배정되게 하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지 않은 땅처럼 보이지만 자기 가정의 사정을 자신들보다 더 잘 아시는 여호와께서 자기 가정에 가장 적합한 땅이 배정되게 하셨을 것이란 믿음에서 기업을 받아들였다. 토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기업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아주 요긴한 정신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그들은 기업정신으로 받아들였다. 남편이 아내가 우선 보기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자신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장 합당하다고 여기셨기에 이 남편을, 또는 이 아내를 만나게 하셨을 것이다. 이 남편이, 이 아내가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런 기업정신은 오늘 우리들에게 아주 요긴한 정신이다. 결혼하여 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이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기업으로 받아들였을 때에 세월이 지나면서 정도 들고 사랑도 생겨 후에 가서 "아하 하나님께서 이래서 이 상대를 나의 배필로 하락하셨구나"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신다. 이런 마음가짐이 바로, 기업정신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기준이 된다.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니라.(4)

어제 글에서 토지에 대한 기업정신(基業精神)을 적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진격하여 점령한 땅을 각 지파별로 그리고 각 가정 별로 분배하던 때에 제비를 뽑아 분배하였다. 그렇게 제비를 뽑아 자기 가정의 몫으로 배정된 땅을 기업이라 하였다. 영어로는 LOT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가정에 배정된 당이 비록 후미진 곳에 쓸모없는 땅일지라도 그들은 불평불만 없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제비를 뽑을 때에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땅이 뽑히게 하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긴하게 적용된다는 점 역시 어제 글에서 지적하였다. 그 점에 대하여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의 경우에 비추어 예를 들어보자.

학업을 마치고 어느 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기대를 걸고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하였는데 막상 다녀보니 자기에게 적합한 회사, 직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잘못 들어온 직장이니 사표를 쓰고 나오느냐 아니면 불만을 품은체로 그냥 다니느냐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그럴 때에 기업정신의 적용이 필요하다. 지금의 직장이 자신의 판단으로는 적합지 않은 직장인 것 같지만 나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평생의 기업으로 이 직장에 보내신 줄로 믿는 믿음이다.

그렇게 믿고 비록 불만족스럽지만 인내하며 매사에 앞장서서 헌신하고 열심을 다할 때에 상사들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고, 그렇게 인정받게 되니 승진의 기회도 남보다 먼저 오게 되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도 된다. 이런 과정이 기업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2010-11-04~07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