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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길을 잃다] 중국이 뭐라해도 꾹 참던 미국, 비판의 포문을 열다

Smart Lee 2011. 8. 11. 01:11
미국 정부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관련해 미국 국채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이 연일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하자, 처음엔 수긍하는 듯하던 미국 내에서도 반발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중국의 빚 중독'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의 진짜 의도는 총 3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투자 손실에 대한 자국 내 비판을 무마하려는 것"이라며 "중국인들도 중국 정부가 왜 막대한 부(富)를 국내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대신 계속해서 미국에 빌려주는지(미국 국채에 투자하는지) 묻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가 지난 주말 중국 정부의 외환보유액 관리에 대한 비판으로 달궈졌다"고 8일 전했다.

이번 사태 초기 미국 정부와 의회의 무능을 비판하는 중국 측의 입장을 비교적 담담하게 전하던 미국 언론이 중국에 칼날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우선 중국의 비판이 내정간섭 수준에 이를 정도로 도를 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 인민일보는 8일자 사설에서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을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전략적인 무기로 이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도 6일자 사설에서 "미국의 달러화 발행에 대한 국제적인 감독이 이뤄져야 하며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새롭고 안정적인 통화를 도입하는 것도 한 국가에서 초래된 재앙을 피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요동치는 주요 화폐 가치 -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세계 주요 화폐의 가치도 급등락을 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통화로 인식되는 엔화와 스위스프랑화의 가치가 오르고, 자원부국들의 통화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사진은 헝가리 화폐 포린트화와 미국달러, 유로화, 스위스프랑화가 한데 섞여 있는 모습. /로이터
또 미국 정부에 "막대한 군비 지출과 방만한 사회보장 예산을 줄이라"고도 했다. 반면 작년 말 기준으로 약 8820억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해 중국에 이어 미국에 대한 세계 2위 채권국인 일본은 이번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두고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 측의 반발에는 '너희가 미국말고 달리 투자할 곳이 어디 있느냐'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은 중국이 유럽이나 일본 국채를 살 수도 있겠지만, 이 두 시장은 급증하는 중국의 외환보유액을 흡수할 만큼 규모가 크거나 유동성이 충분치 않다고 본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소식이 알려진 뒤 전 세계 증시가 크게 급락했지만, 정작 문제가 된 미국의 국채 금리는 하락(가격 상승)했다. 투자자들이 여전히 미 국채를 금과 함께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로 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왔다. 미 국채가 안정적이고 환금성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출 대금으로 들어온 달러화가 그대로 외환시장에 풀릴 경우 달러화 공급이 늘어나면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미 국채 매입을 통해 상대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평가다.

일부 미국 언론이 중국을 비판하는 논리는 결국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인 것은 위안화 가치를 억제해 자국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어서 양국의 갈등이 또다시 위안화 환율 절상 논란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1-08-10 조선일보 김재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