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성직자가 타락하는 세 가지 이유

Smart Lee 2013. 8. 2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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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직자가 타락하는 세 가지 이유(1)

성 프랜시스는 2천년 교회사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인격과 영성을 갖춘 수행자로 인정받는 분이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성직자가 타락하는 이유 3가지를 지적한 말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성직자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내용이기에 옮겨 적는다.

첫째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3가지 이유들에 대하여 한 가지씩 생각해 보자.

 

예수님의 삶은 기도하시는 삶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섬기고자 헌신한 우리들 성직자들은 기도를 게을리 한다. 그리고 요즘 성직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나 바쁘다. 기도할 시간과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쁘다. 누가복음 22장서 이르기를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들 성직자들은 기도가 습관이 되지를 못하고 습관에 따라 TV 보고, 신문 보고, 잡담에 어울린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하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 주는 장면이 누가복음 5장에 나온다. 예수님의 소문이 백성들 속에 퍼져 인기가 하늘같이 치솟을 때였다. 백성들이 구름떼 같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셨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누가복음 5장 16절)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이런 모습, 이런 삶의 방식이 꼭 필요한 때이다. 그래야 타락함이 없이 성직자 본연의 자리를 지켜 나갈 수 있게 된다.

 

        성직자가 타락하는 세 가지 이유(2)

 

 

성 프랜시스는 성직자가 타락하는 이유 3가지를 언급하였다. 첫 번째인 기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제 글에서 적은 바이다. 오늘은 두 번째인 책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교회는 거룩한 독서(LEXIO DIVINA)에 대한 오랜 전통이 있다. 성직자로써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영성을 위하여 독서는 기본이요 필수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성직자들은 책 읽기를 게을리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차분한 마음으로 독서하기에는 성직자들의 일상생활이 너무나 바쁘다는 이유이다. 둘째는 성직자들이 어린 시절은 물론이려니와 신학교 재학시절부터 독서가 습관이 되어 있지를 못한 이유이다. 어떤 이들은 성직자가 경전만 열심히 읽으면 되지 여타 독서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독서를 하지 않고 경전만 읽어서는 경전 자체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폭 넓은 독서의 세계는 우리들의 인격의 깊이를 더하여 주고, 경전을 바로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력을 더하여 준다. 그리고 독서는 상식의 세계를 넓혀 준다. 성직자들에게 상식은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성직자들이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빈축을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상식을 존중하지 않는 점에 있다. 그러기에 상식(常識,Common Sense)은 영적 지도자들인 성직자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 된다. 그런 상식을 우리는 폭넓은 독서로부터 체득하게 된다.

 

        성직자가 타락하는 세 가지 이유(3)

 

성 프랜시스는 성직자가 타락하는 이유 3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는 기도하지 않는 이유이고, 둘째는 책을 읽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셋째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이유를 들었다. 첫째와 둘째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살폈다. 오늘은 셋째인 육체노동을 하지 않기에 성직자들이 타락하게 된다는 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옛말에 쓸모없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 하였다. 불한당이란 말은 한자로 아닐 불(不)자에 땀 흘릴 한(汗) 그리고 무리 당(黨)이다. 땀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무리가 불한당들이다. 성경에서도 창세기 3장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마에 땀 흘리며 살아야 한다’ 하였다. 요즘 들어 숱한 병들이 땀 흘리는 노동을 하지 않고 불한당처럼 살아가는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마음과 몸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 노동을 통하여 치료하는 노동요법(勞動療法,Work Therapy)이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웬만한 병은 두레마을 공동체에서 여섯 달만 노동하며 지내면 회복된다.

 

요즘 들어 국가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 중독 청소년 문제나 학교폭력 같은 경우 함께 노동하며 지내면 급속히 회복된다. 문제는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시행하는 공교육이 이런 해결책을 과감히 실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란 데에 문제가 있다. 성직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직자들은 직책상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말은 많이 하고 육체노동은 하지 않으니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그렇게 잃은 균형에서 타락이란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도원 전통에서는 영성수련을 함에 있어 육체노동을 필수로 여겼다. 한국 목회자들의 영성을 회복함에는 육체노동을 필수과목으로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성직자가 타락하는 세 가지 이유(4)

 

나는 지금 71세이다. 30세에 개척사역을 시작하여 지난해로 40년을 채우고 70세에 은퇴하였다. 그러나 은퇴하였지만 일을 멈춘 것은 아니다. 구리에서 동두천으로 옮겨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10년을 더 열심히 일하여 80세에 이르러 50년 목회를 채우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0년간의 목회를 돌아보며 깊이 반성하는 바가 있다.

 

30세에 빈민촌에서 개척을 하던 시절에는 마을 청년들과 넝마주이를 함께 하며 개척자로 일하는 생활을 하였다. 넝마주이 들통을 메고 하루 종일 쓰레기통을 뒤지며 쓸 만한 물건을 건져서는 저녁나절에 팔아, 굶고 있는 가정들에게 밀가루를 사다 주는 일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청계천 빈민촌이 철거된 후에는 철거민들과 화성군 남양만 간척지로 집단 귀농하여 마을을 이루고, 교회를 세우며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일꾼으로 살았다. 그러는 동안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던 때부터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강사로 초청을 받게 되어, 교인들과 함께 땀 흘려 노동하며 살아가던 삶의 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노동현장을 떠나 말쟁이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50대와 60대를 보내는 사이에 나 자신의 정체성(自己正體性,Self Identity)을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는 반성이다. 그런 반성을 하면서 이제 70대에 들어서면서 ‘30대에 출발하던 때의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또한 청계천 빈민촌에서의 빈민선교 시절이 나에게는 초대교회 시절이기 때문에 ‘그 시절로 되돌아가야지’하는 마음도 함께 먹고 있다. "어떻게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요즘 나의 기도제목이자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2012-05-29~06-01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