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나이키와 부산 신발공장

Smart Lee 2013. 10. 1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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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키와 부산 신발공장(1)

1964년 미국에서 두 유대인이 합작으로 신발회사를 세웠다. 합작이래야 한 사람이 500불식 출자하여 뒷골목 허름한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책상 한 개와 전화 1대를 놓고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운동화 300켤레를 주문하여 자동차 뒤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정도였다. 이듬해인 1965년에 첫 전임직원이 들어왔다. Johnson이란 이름의 이 직원은 명문 스탠포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여 안정을 구하려들지를 말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 크게 일으켜 보겠노라는 야심을 품은 젊은이였다.

 

Nike라는 브랜드도 Johnson이 지은 이름이다. Nike회사가 자신의 브랜드로 첫 제품을 출시하기는 6년 뒤인 1971년이었다. 그 후로 나이키는 부산신발공장에 하청을 주어 제품을 생산하였다. 한국노동자들의 섬세한 일솜씨가 우수한 제품을 만들었기에 나이키는 일약 대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부산의 노동자들이 나이키를 키운 셈이다. 나이키의 하청을 받은 부산신발공장들은 20여 년간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88년 올림픽 이후 민주화가 이루지고 노동쟁의가 심하여지며 임금이 급상승하자 나이키는 미련 없이 하청회사를 인도네시아로 바꾸었다.

 

부산신발공장들은 졸지에 중고품 기계와 수만 명의 실업자들만 남게 되었다. 80년대 중반 부산신발공장들이 한참 호황이었을 적에 나는 미국에서 교포들을 위한 집회를 인도하였다. 틈틈이 교포들 가정을 방문하니 신발가게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이키 운동화를 판매하는 가게들이었다. 한인교포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이 미국 전국에 무려 5천여 가게나 되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만들기는 부산 노동자들이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팔기는 미국한인교포들이 파는 것이었다. 유대인이 세운 회사는 중간에서 경영을 잘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는 신발가게를 하는 교포들에게 권하였다.

"그러지 말고 미국 각 도시에 흩어진 한인신발가게들을 조직화하세요. 5천 가게가 조직화 되면 막강한 파워가 됩니다. 하나의 조직을 결성하여 나이키 본사와 협상도 하고 또 부산으로 사람을 보내어 신발제조업자들과 의논하여 한국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십시오. "나이키' 대신에 '코이키'라 하든지 '키다리"라 하든지 코리언들이 힘을 모아 브랜드를 만드십시오. 유대인들이 하는 걸 한국인들이 왜 못합니까?"하였더니 "우리 한국인들은 단결이 안 됩니다"고 답할 뿐이었다.

 

나이키와 부산 신발공장(2)

 

1964년 두 명의 유대인 젊은이가 500불씩 출자하여 나이키 회사를 시작하였다. 나이키는 부산신발공장에 하청을 맡겼다. 한국 노동자들의 섬세한 솜씨를 힘입어 나이키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였다. 부산신발공장들이 한참 경기가 좋았던 시절인 80년대 초에 나는 부산 어느 교회의 초청을 받아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 교회의 장로가 나이키에 신발을 납품하는 신발공장의 사장이었다.

 

나는 집회 기간 동안 틈틈이 그 사장을 다음같이 설득하려 힘썼다.

"장로님 부산신발공업이 경기가 좋을 요즘이 기회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임금이 오르고, 조건이 나빠지게 되면 나이키는 다른 나라로 하청을 옮기게 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하여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부산 지역에 있는 신발공장들이 백여 회사가 된다 하니 한 회사가 일억씩을 출자하면 백억이 됩니다. 그러면 상공부 같은 정부 부서에서도 백억쯤 지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2백억을 기금으로 삼아 우리 자체 브랜드를 육성하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장로님 같은 분이 앞장서시면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거듭 설득하려 노력하였으나 그 장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 하였다. 나는 거듭 설명하였다.

"장로님 지금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할 일입니다.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미래를 보고 공익(公益)을 위하여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장로는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나이키가 갑자기 인도네시아로 옮겨가고 부산신발공장들이 문을 닫게 될 때에 그 장로도 부도가 나서 사업이 거덜 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이키를 생각하고 부산신발산업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2-08-31~09-01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