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성 교육을위한 소중한 말씀들

거제도에서..

Smart Lee 2013. 10. 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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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에서..

어제 밤부터 거제고현교회에서 집회를 인도 중이다. 어제 오후 비행기 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승용차로 거가대교를 건너면서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오늘은 오전 성경공부를 마치고 고현교회의 목사와 함께 대우조선을 방문하였다. 대우조선은 140만평의 옥포만에 세워진 거대한 조선소이다. 옥포만이 어떤 곳이던가? 이순신 장군이 왜선을 물리친 첫 승리를 거둔 곳이 옥포만이다.

 

이런 유서 깊은 바다에 세계굴지의 조선소가 세워져 나라의 경제를 지키며 국위를 세계에 떨치고 있음이 여간 뜻 깊은 일이 아니다. 대우조선에는 32,000명의 일꾼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10만을 넘어서는 가족들이다. 대우조선의 올 해 매출 목표가 무려 16조라 한다. 그러니 이들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의 전 창업주(創業主)는 물론 김우중(金宇中)회장이다.

 

나는 그 어른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 일꾼을 생애의 마지막까지 기업현장에서 경영보국(經營報國)하게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고 있게 하는 현실이 나로서는 몹시 못마땅하다. 물론 큰 과오가 있었기에 제재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꾼은 과오보다 공이 훨씬 더 크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과오는 감싸주고 공로는 칭찬하여 주고 높여 주어야 이 사회가 발전이 있다. 크게 일할수록 과오도 커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보신만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과오나 허물이 있을 수 없다. 남다른 뜻을 품고 일을 하기에 과오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앞장 선 개척자들의 과오에 너그러워져야 한다.

 

이 나라 이 국민들이 이만큼이나마 먹고 사는 것이 누구의 덕이던가? 기업가들의 덕이요 전문 기술자들의 땀과 헌신의 덕이다. 대우조선은 세계경기의 후퇴로 세계 곳곳에서 조선사들이 쓰러지고 있는 터에 첨단기술을 발전시켜 그 기술로 연간 10조를 넘어서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런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소의 밑창에서 용접하는 일꾼들, 밤늦게까지 설계에 몰두하고 있는 설계사들, 수주하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세계를 다니고 있는 영업사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게 우리 국민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감사의 마음을 표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제도에서(2)

 

오늘로 거제도 고현교회에서 4일간의 집회를 마쳤다. 오늘 오전 성경공부를 마친 후 오후에는 거제도 안에 있는 유적지 3곳을 들렀다.

 

첫째는 흥남부두에서 10만 명 피난민을 철수시킨 기념비이다. 1950년 12월 24일 미군이 밀려드는 중공군에게 밀려 흥남부두에서 철수할 때에 부두에 밀려든 10만 명의 북한 피난민들을 함께 철수시켰다. 당시로써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들을 버려두면 그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처지였다. 이에 여러 사람들의 피가 마를 정도의 노력에 10만 피난민을 군함에 태우고 피난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미군 배들은 그들을 거제도에 내리게 하였다. 착하게도 거제도민들은 그들을 정성을 다하여 맞아들여 함께 살았다. 세계사에도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지금 거제도가 소득이 4만 불에 가까운 부촌이 된 것은 그때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잘 지켰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둘째는 포로수용소기념관이다. 기념관을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슬픈 역사를 뼛속 깊이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에 거제도에는 17만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북한포로 15만에 중공군 포로 2만이었다. 문제는 포로수용소에서 좌우이념대립이 격화되어 죽이고 죽는 살육이 벌어져 수천 명이 죽어나갔다는 사실이다. 포로수용소가 바로 민족 비극의 축소판 현장이 된 것이었다. 이런 기념관은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개방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는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기념관이다.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은 한국 대통령들의 기념관 중에 가장 소박하고 알차게 꾸려진 기념관 일듯 싶다. 김영삼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의 자취를 전시한 자료들 중에 특별히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김 대통령의 서울대학교 철학과 다니던 시절의 성적표였다. 성적이 거의 C와 D로 나와 있어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 이렇게 C와 D로 시들하게 나와도 대통령까지 할 수 도 있구나 하는 사실이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2012-11-28/30 김진홍목사의 아침묵상)